최류빈 시인 / 간빙기 밥통
그만 얼어버려 설익은 세상, 체압(體壓)이 과부하 된 시간 끝마치고서야 한 술 크게 퍼내는 걸, 늙은 공기 내 뿜고 배알을 나선으로 타고 노는 온도야, 열상 입어도 눅눅해 지지 않으려 치밀한 표정으로 탁성 내뱉던 걸, 온종일 정수리 위로 신호탄을 내 뿜으며
압력솥은 분자단위로 진동하며 구수한 밥 냄새 퍼 올리던 걸,
당신도 플러그드-인 했었다는 사실을 회색빛 꼬리를 뒤안길로 기-일게 내빼 어디선가 전력을 공급받고 있었다는 걸, 그득히 남은 압력솥 코드를 뽑으면서야 느끼는 한기
미끈한 밥그릇에 밀알 같은 식탐 올릴 때 마다 도료 바른 곡면 일층 계에 아밀라아제 덧칠할 때 마다 치열하게 곡기 가득한 식단 한 상이 당신에겐 빙기와 간빙기의 거듭 이였다는 걸,
밥통의 레버를 보온에 맞추며 하루쯤 찾아오는 결식의 시간 이젠 나 달갑게 맞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최류빈 시인 / 雨와 詩
그런 미온적인 것이 아니다. 아니다 내가 어르고자 하는 게 얄팍한 것들과 또 두텁지만 철면인 것들, 아니다.
몇 자 끄적이는 시간. 그저 생리적인 현상일 지도 자아실현과 같은 거창한 문구 때문인지도 모르나, 아니다.
활자들을 눌러가며 꾹 담고 싶은 언어들, 시어 행간에 녹아 흐를 것이나,
나는 옹졸하고 옹졸하며 오늘도 옹졸한 표정을 짓고 써 올리는 금일의 글. 창 밖에는 비가 아주 산성으로 내리고
리트머스 종이도 아닌 유리창은 홍조 띈다. 열띤 증산, 내가 녹아 거기에 맺혀 흐른다.
당신들은 녹아버려 살만 남은 비닐우산을 들고 다닌다. 거리의 불한당, 나는 비좁은 방 안이지만 그런 얼굴들을 보려 애쓴다. 철인 같은 生, 손아귀 속에 우산대 움켜쥐는
최류빈 시인 / 귤피
귤피는 하나의 자궁 차단한 몸속을 궁굴던 놈들 토악질하길 기다리는 모성
놈은 제왕절개를 주저하면서도 낱알들 달큼한 과즙에 썩지 않게 언젠가 순산하길 바라 메스 하나 없이 -귤 꼭지 주홍빛으로 익어만 가고탕제원 가는 길, 외래종 오렌지의 기다란 과육을 기억해 핏덩이 같은 놈들 처절히 배설하며 귤피차를 달이는 오후, 귤은 묵직하게 침전하고 헐벗은 채로 나뒹구는 분신을 기억 한다 -귤피는 진갈색으로 익어만 가고
씨조차 드문 귤에게 심어진다는 건 전신을 달여 가며 몸을 비틀며 새끼를 낳고자 꿈틀대는 귤피생채기 한 겹 벗겨 내는 날 알알이 가득 찬 속살 널 잊는다 해도 귤피, 말라 뒤틀린 생으로 너 점철된다 해도-너는 새끼 귤로 심어질 거야 꼭지 부풀리며
2017년《포엠포엠》등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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