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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인희 시인 / 시간을 품은 닭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8.

김인희 시인 / 시간을 품은 닭

 

 

  부드러운 깃털과 붉은 볏이 아름다웠다

  독수리와 매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아 온 가족을 지켜 온

  나의 아버지, 울음소리가 장대했다

 

  어머니는 늘 나를 체온으로 덮여주시고 품어주셔서

  "있으라!"하니 있었던 다른 사물들과는 달리

  직접 그 아버지와 관계하여 나를 알의 상태로 낳으셨고

  시간과 관계한 나의 어머니는 알의 상태인 나를 병아리로 깨우고자

  고통의 좌정을 하고 계신다

 

  어느 날 아침

  아버지의 '꼬끼오!'하는 우렁찬 음성이 알 속으로 울려 퍼져

  나는 놀라 내 있는 어둠을 부리로 쪼아 비틀거리며 상징계의 문턱으로 나왔다

  새롭고 경이로운 시간이 시작되었으나

  ‘어떠한 기의도 잡히지 않는다. 이 체계에 나타나는 것은 단지 순수한

  차이, 생략, 선일 뿐......’넓은 들판에 펼쳐진 이름 모를 수많은 꽃과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사상(事象)만이 병아리 앞에 펼쳐져 있네

 

  독수리나 매의 공격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하는 일―

  가족을 위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일―

  자유를 구가하고 푸른 하늘을 마음껏 노래할 풀밭을 지키는 일―

  아버지가 지금껏 해 오신 것처럼

  아버지의 높은 학문을 배우려 나또한 끝나지 않을 둥근 길로 들어섰네

 

  온 가족을 감싸고도 남는 부드러운 깃털과

  높은 곳에 뜻을 둔 강렬한 붉은 볏과

  세상의 시간을 둥근 길 구석구석 흘려보내는 장대한 울음소리

  나는 높은 홰에 날아올라, 솟아오르는 태양을 바라보고 선다

  아버지의 형상을 한 점이라도 놓치지 않으려

  아버지의 모습과 소리를 담고

  두 눈을 꼭 감고 아랫배에 길게 숨을 모은다.

 

*라플랑슈

 

월간 『현대시』 2012년 10월호 발표

 

 


 

 

 김인희 시인

1992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 2010년 경희사이버대학교 NGO학과 졸업. 1992년 첫 시집『아담의 상처는 둥글다』 출간. 1993년 스토리시집『물을 찾아서』로 대산재단 창작 지원금 수혜. 1994년 월간 『현대시』에 『불의 오르가슴』 연작시 1회 40페이지씩 4달간 연재.

 1994년 2시집 『별들은 여자를 나누어 가진다』 출간. 1996년 계간 시와 사상에 세 번째 시집 『여황의 슬픔』 연재. 1996년 3시집『여황의 슬픔』 출간. 1997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7년 4시집 『시간은 직유 외엔 그 어떤 것으로도 나를 해석하지 말라하네』출간. 2001년 문예진흥원 정보화 지원 수혜. 2007년~ 2010년 계간지『시선』 자전적 의식해부학(의식기하학) 에세이 『언어게놈지도를 찾아서』연재. 2016년 5시집 『내 사랑, 흰이 돌아온다』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