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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경 시인 / 담쟁이덩굴의 독법
손끝으로 점자를 읽는 맹인이 저랬던가 붉은 벽돌을 완독해 보겠다고 지문이 닳도록 아픈 독법으로 기어오른다 한번에 다 읽지는 못하고 지난해 읽다만 곳이 어디였더라 매번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다 보면 여러 번 손닿은 곳은 달달 외우기도 하겠다 세상을 등지고 읽기에 집중하는 동안 내가 그랬듯이 등 뒤 세상은 점점 멀어져 올려다보기에도 아찔한 거리다 푸른 손끝에 피멍이 들고 시들어 버릴 때쯤엔 다음 구절이 궁금하여도 그쯤에선 책을 덮어야겠지 아픔도 씻은 듯 가시는 새봄이 오면 지붕까지는 독파해 볼 양으로 맨 처음부터 다시 더듬어 읽기 시작하겠지
시집 『담쟁이덩굴의 독법』(고요아침, 2010) 중에서
나혜경 시인 / 수덕여관
딱 하룻밤, 아름다운 외박을 꿈꾸거든 수덕사 앞 수덕여관에 들어 보라 절이 여관인 듯 여관이 절인 듯 여관도 절도 다 내 집인 듯도 하여 집도 그립지는 않겠네 숲으로 난 창이 있는 8호실에 누우면 세속인 듯 승속인 듯 내가 숲을 찾아 온 게 아니라 숲이 나를 찾아와 나도 본래 숲이었음을 깨닫게 해 줄 것만도 같네 열어놓은 창으로 솔바람이 불어와 내 몸에 숨은 잎들이 일어서기도 하겠고 월담하듯 별들이 창을 넘는 밤이 오면 나도 마음을 넘어 그 많은 별들과 만리장성을 쌓겠네 오늘 밤만은 새 사랑으로 견우별도 직녀별을 그리워하지는 않겠네 오늘 하룻밤만은 과분하게 직녀별의 사랑을 빼앗는 음탕한 여자가 되어 부끄러워도 좋겠네
시집 『담쟁이덩굴의 독법』(고요아침, 2010)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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