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 시인 / 북어
밤의 식료품 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북어들의 일 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
한 쾌의 혀가 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부끄러움
나는 말의 변비증을 앓는 사람들과 무덤 속의 벙어리를 말한 셈이다.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
막대기 같은 생각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일상의 사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반성함.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시집 『코뿔소는 죽지 않는다』(도요새, 2000) 중에서
최승호 시인 / 공장지대
무뇌아를 낳고 보니 산모는 몸 안에 공장지대가 들어선 느낌이다. 젖을 짜면 흘러내리는 허연 폐수와 아이 배꼽에 매달린 비닐끈들. 저 굴뚝들과 간통한 게 분명해! 자궁 속에 고무인형 키워온 듯 무뇌아를 낳고 산모는 머릿속에 뇌가 있는지 의심스러워 정수리 털들을 하루종일 뽑아댄다.
시집 『세속도시의 즐거움』(세계사, 1990)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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