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아 시인 / 철길
한때 저것은 쩔쩔 끓는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철로 굳어지기 전, 철길이 되기 이전, 그때는 끓어 넘치는 열정으로 세상을 벌겋게 달구기도 했을 것이다 단단한 쇠파이프나 창, 칼, 망치 같은 것이 되어 세상의 보이지 않는 벽을 뚫거나 부수고 싶었을 것이다 하루 한 끼를 위해 추운 거리를 헤매는 이들을 떠올려 뜨끈한 밥과 국물을 담아주는 식판이나 국자를 상상하기도 했을 것이다 때로 교향곡에 담겨 절절한 사랑노래를 부르고도 종소리에 실려 널리 울려 퍼지고도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굳어지면서 생각했을 것이다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은 조용히 가장 낮은 몸을 만드는 것 그래서 철은 길이 되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저 길을 보며 가지 않은 길에 대해 하염없이 생각했을 것이다 차디찬 현실과 뜨거운 심장이 동시에 멎는 자살을 꿈꾸기도 했을 것이다 그 길로 방금 열차 하나가 지나갔다 바퀴가 지날 때마다 더 낮아지고 단단해지는 철길을 보며 또 누군가는 눈물을 삼키며 이를 악물었을 것이다
계간 『시와 경계』 2017년 여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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