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오 시인 / 한없는 노래
어매여 한없는 노래여
나는 시방 "자식은 애물"이라는 옛말을 생각하고 있다.
세치 앞이 안보이는 어매는 왜 그리 자꾸 속을 태우는가 그러다간 영 그 눈을 못쓰게 맹글지 않겠는가
골목 길을 골라서 행여 뒤따를 놈 있을가봐 뺑뺑 돌아서
아주 생판 딴 길을 갔다간 겨우 겨우 찾어서 남의 집 사랑방에 숨어 있는 "애물"을 찾어온 어매
"이자식아 네가 왜 그리 보구 싶으냐"
어매야 인젠 제발 나스지 마라 눈 어둡고 귀도 어두운 어매 돌아가는 길에 무엇에 칠가봐 정말 겁이 난다
요전에도 옷보퉁이를 들고 유치장(留置場) 문 밖에 와 쭈그리고 앉었더구나
취조(取調)를 나가는 길에 내가 부르지 않었더라면 "애물"을 알어 보지도 못할 어매야 다음부턴 아예 경찰서(警察署) 문(門) 앞에 얼씬도 마라
경찰서(警察署)로 감옥(監獄)으로 어매야 무던히도 다녔구나 백발(白髮)이 성성한 어매야
꿈자리가 사납더라고 걱정 끝에 점치러 가고 오오 어매야 그게 무슨 짓이냐
그렇지만 어매여 나의 자랑 나의 노래여
망보러 나갔을 때의 어매는 천리안(千里眼)이다 그리고 시골서 온 일가가 무어라고 무어라고 허튼 소리 지껄였을 때 어매는 훌륭히 해설(解說)을 했다
동네 여편네들이 주접을 떨 때 어매는 차근 차근 타일르구 가르쳐서 모오두 동무가 된 것을 어매야 아무리 숨겨도 나는 알았다
어매야 나는 어깨가 그만 으쓱해지더라
나는 어매가 바라보는 눈초리가 괴롭다 말없이 감박이며 어디까지나 따라오는 어매의 눈이 귀하기 때문에 몹시도 괴롭다
어매야 인젠 이 자식을 잊어버려라
그래도 어매는 못 잊을게다 아무리 나오지 말래도 무데기 옷 입고 비척 비척 "애물"을 찾아 나올게다
내가 안된다고 들어 가시라면 염려 말고 가라고 보내 놓고는 내 사라지는 뒷 모습을 넋없이 바라보다간 눈도 귀도 아조 영 못쓰게 상해버릴게다
그렇지만 어매야 나는 간다 그리기에 어매야 나는 잊고 쉬어다오
어매여 한없는 나의 노래여
창(窓), 정음사, 1948
유진오 시인 / 향수
금시에 깨어질듯 창창한 하늘과 별이 따로 도는 밤
엄마여 당신의 가슴 우에 서리가 나립니다.
세상메기 젖먹이 말썽만 부리던 막내놈 어리다면 차라리 성가시나마 옆에 앉고 보련만
아! 밤이 부스러지고 총소리 엔진소리 어지러우면 파도처럼 철렁 소금 먹은듯 저려오는 당신의 가슴 이 녀석이 어느 곳 서릿 길 살어름짱에 쓰러지느냐.
엄마여 무서리 하얗게 풀잎처럼 가슴에 어리는 나의 밤에
당신의 옷고름 히살짓던 나의 사랑이 지열(地熱)과 함께 으지직 또 하나의 어둠을 바위처럼 무너뜨립니다.
손톱 밑 갈갈이 까실까실한 당신의 손 창자 속에 지니고
엄마여 이 녀석은 훌훌 뛰면서 이빨이 사뭇 칼날보다 날카로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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