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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이호우 시인 / 또다시 새해는 오는가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25.

이호우 시인 / 또다시 새해는 오는가

 

 

빼앗겨 쫓기던 그날은 하그리 간절턴 이 땅

꿈에서도 입술이 뜨겁던 조국(祖國)의 이름이었다

얼마나 푸른 목숨들이 지기조차 했던가

 

강산(江山)이 돌아와 이십년(二十年) 상잔(相殘)의 피만 비리고

그 원수는 차라리 풀어도 너와 난 멀어만 가는

아아 이 배리(背理)의 단층(斷層)을 퍼덕이는 저 기(旗)빨.

 

날로 높는 주문(朱門)들의 밟고 선 밑바닥을

`자유(自由)'로 싸맨 기한(飢寒) 낙엽(落葉)마냥 구르는데

상기도 지열(地熱)을 믿으며 씨를 뿌려 보자느뇨

 

또다시 새해는 온다고 닭들이 울었나 보네

해바라기 해바라기처럼 언제나 버릇된 다림

오히려 절망(絶望)조차 못하는 눈물겨운 소망이여.

 

휴화산, 중앙출판사, 1968

 

 


 

 

이호우 시인 / 만사(輓詞)

부제 : 곡(哭), 백농선생(白農先生)(1659년)

 

 

차라리 원수 앞엔 이겨 피던 해바라기

도루 찾은 이 하늘에 동은 아직 트지 않고

도리어 버림 속에서 외로 지고 말다니.

 

험한 가시길을 평생(平生)을 앞장 서서

영광은 겨레에 돌리고 어려움만 져 왔거늘

떠나는 이날에 마자 눈 못 감게 하다니.

 

상기도 어두운 바다 조각배 물결은 높은데

외로이 남았던 등대(燈臺) 또 하나 꺼져만 가는가

뿌린 씨 꽃피는 그날에 거듭 한번 오소서.

 

휴화산, 중앙출판사, 1968

 

 


 

 

이호우 시인 / 매우(賣牛)

 

 

송화(松花)가루 나리는 황혼(黃昏) 강을 따라 굽은 길을

어슬렁 어슬렁 누렁이 멀리 간다

그 무슨 기약 있으랴 정이 더욱 간절타.

 

산(山)마을 농사집이 끼닌들 옳았으랴

육중한 몸인지라 채질도 심했건만

큼직한 너의 눈에는 아무탓도 없구나.

 

너랑 간 밭에 봄보리가 살붇는데

거두어 찧을 제면 너 생각을 어일꺼나

다행히 어진 집에서 털이 날로 곱거라.

 

이호우시조집, 영웅출판사, 1955

 

 


 

 

이호우 시인 / 매화(梅花)

 

 

아프게 겨울을 비집고

봄을 점화(點火)한 매화(梅花)

 

동트는 아침 앞에

혼자서 피어 있네

 

선구(先驅)는 외로운 길

도리어

총명이 설워라.

 

휴화산, 중앙출판사, 1968

 

 


 

 

이호우 시인 / 목숨

 

 

저리도 넓은 하늘

어딘들 못 사리오

 

이리도 좁은 하늘

어디서 살으리오

 

수유(須臾)의 목숨을 안고

내 우러러 섰도다

 

휴화산, 중앙출판사, 1968

 

 


 

이호우 시인

시조시인. 아호는 이호우(爾豪愚). 경상북도 청도(淸道) 출생. 1924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28년 신경쇠약증세로 낙향하였고, 29년에 일본 도쿄예술대학[東京藝術大學]에 유학하였으나 신경쇠약증세의 재발과 위장병으로 귀국하였다. 시작활동은 39년 동아일보 <투고란>에 <낙엽>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고, 40년 《문장》에 이병기(李秉岐)의 추천으로 <달밤>이 실리면서 본격화되었다. 광복 후 대구일보 편집과 경영에도 참여하였다. 55년 첫시조집 《이호우시조집》을 간행하였고, 그 후의 작품들을 모아 68년 《휴화산(休火山)》을

발간하였다. <달밤>에서와 같이 범상한 제재를 선택하여 평이하게 쓴 것이 초기 작품의 특징이라면 《휴화산》에서는 인간 욕망의 승화와 안주적 경지를 나타내고 있다. 55년 첫시조집으로 제 1 회 경북문화상을 받았고 72년 대구(大邱) 남산공원에 시비가 세워졌다. 55년 첫시조집으로 제 1 회 경복문화상을 받았고, 편저로 《고금시조정해(古今時調精解)》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