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우 시인 / 또다시 새해는 오는가
빼앗겨 쫓기던 그날은 하그리 간절턴 이 땅 꿈에서도 입술이 뜨겁던 조국(祖國)의 이름이었다 얼마나 푸른 목숨들이 지기조차 했던가
강산(江山)이 돌아와 이십년(二十年) 상잔(相殘)의 피만 비리고 그 원수는 차라리 풀어도 너와 난 멀어만 가는 아아 이 배리(背理)의 단층(斷層)을 퍼덕이는 저 기(旗)빨.
날로 높는 주문(朱門)들의 밟고 선 밑바닥을 `자유(自由)'로 싸맨 기한(飢寒) 낙엽(落葉)마냥 구르는데 상기도 지열(地熱)을 믿으며 씨를 뿌려 보자느뇨
또다시 새해는 온다고 닭들이 울었나 보네 해바라기 해바라기처럼 언제나 버릇된 다림 오히려 절망(絶望)조차 못하는 눈물겨운 소망이여.
휴화산, 중앙출판사, 1968
이호우 시인 / 만사(輓詞) 부제 : 곡(哭), 백농선생(白農先生)(1659년)
차라리 원수 앞엔 이겨 피던 해바라기 도루 찾은 이 하늘에 동은 아직 트지 않고 도리어 버림 속에서 외로 지고 말다니.
험한 가시길을 평생(平生)을 앞장 서서 영광은 겨레에 돌리고 어려움만 져 왔거늘 떠나는 이날에 마자 눈 못 감게 하다니.
상기도 어두운 바다 조각배 물결은 높은데 외로이 남았던 등대(燈臺) 또 하나 꺼져만 가는가 뿌린 씨 꽃피는 그날에 거듭 한번 오소서.
휴화산, 중앙출판사, 1968
이호우 시인 / 매우(賣牛)
송화(松花)가루 나리는 황혼(黃昏) 강을 따라 굽은 길을 어슬렁 어슬렁 누렁이 멀리 간다 그 무슨 기약 있으랴 정이 더욱 간절타.
산(山)마을 농사집이 끼닌들 옳았으랴 육중한 몸인지라 채질도 심했건만 큼직한 너의 눈에는 아무탓도 없구나.
너랑 간 밭에 봄보리가 살붇는데 거두어 찧을 제면 너 생각을 어일꺼나 다행히 어진 집에서 털이 날로 곱거라.
이호우시조집, 영웅출판사, 1955
이호우 시인 / 매화(梅花)
아프게 겨울을 비집고 봄을 점화(點火)한 매화(梅花)
동트는 아침 앞에 혼자서 피어 있네
선구(先驅)는 외로운 길 도리어 총명이 설워라.
휴화산, 중앙출판사, 1968
이호우 시인 / 목숨
저리도 넓은 하늘 어딘들 못 사리오
이리도 좁은 하늘 어디서 살으리오
수유(須臾)의 목숨을 안고 내 우러러 섰도다
휴화산, 중앙출판사,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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