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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여원 시인 / 라온하제*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11.

이여원 시인 / 라온하제*

 

 

  우울하고 맑은 감정을 위해서

  넓은 거미줄과 화창한 빛들이 필수다

  짧은치마와 한 박스의 스타킹이 거들난지 오래

  화장대 거울 앞과 화장실 거울 앞에서 표정이 다르듯

  젊지만 그늘진 삐딱한 계절

  연애와 결혼과 아이는 사치품목이라는 검은 펀딩

  지구 바깥으로 내 몰리는 희망 따위로

  더 이상 되돌아 나오지 않아도 되는

  거울, 거울을 꿈꾼다

  인간을 강의 하는 강사의 입술이 너무 두껍고

  비 내리는 계절이 너무 길다는 것

  정직은 꿈도 못 꾸고 임시직으로 버틴

  냄새나는 발가락 같은 세상을

  그래도 하늘은 높고 푸른 계절마디엔

  좌절의 발사체가 카운트다운을 세고 있다

  날마다 들이키는 공기와 햇빛은 공짜 쿠폰 같은 것

  오래 웅크린 작은 나의 감옥에서

  통조림 같은 나의 감옥에서

  푼돈같이 짤랑거리는 숨소리들

  시간제 계절을 돌고 도는 동안

  거울 속의 얼룩진 얼굴아 초록 연두 빨강들아

  시급과 최저임금에 부풀려진 풍선 같은

  샘플 화장품을 바르는 비루한 표정의 얼굴들아

  즐거운 연휴들은

  어느 전쟁 속으로 징집되었나

  내 두 손바닥을 매일 떠나고 숨는 얼굴아

  두 무릎 사이에 파묻힌 잠이

  잠깐의 휴양지가 되었구나

  악어가죽 같은 계절을 뜯어 와야겠다

 

*기쁜 내일이란 순 우리말

 

계간 『열린시학』 2016년 여름호 발표

 

 


 

이여원(李如苑) 시인

진주에서 출생. 201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