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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명수 시인 / 집어등(集魚燈)*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3. 8.

김명수 시인 / 집어등(集魚燈)*

 

 

꽃밭 속일까

바다 속이 정녕 꽃밭 속일까

대관령 위 너훌너훌

흘러가는 흰 구름 속

그 구름 뭉게구름 꽃밭 속일까

 

아니라네 아니라네

뱃사내들 혼령 삼킨

시퍼런 바닷물 속

열 번도 고개 저어 꽃밭 속 아니라네

 

해마다 여름 되면 이까*철이 돌아오고

이까철 돌아오면 오징어배 타던 사내

이른 새벽 단칸방에 처자식 남겨두고

 

나누는 몫 3․7제

고용살이 밤샘 어로

파도에 목숨 거는 생때 같은 사내들아

 

피 토하는 통곡소리

부둣가에 들리는데

끝 모를 그 밑바닥 어질머리 바닷물 속

 

오징어잡이 불꽃이 너무 밝아서

밤새워 허기져 물레 돌릴 때

그대 눈에 헛보이던 시퍼런 바닷물 속

그 바다 천 길 파도

꽃밭 속 아니라네

 

그대 혼령 삼켜버린

시퍼런 바닷물 속

그 바다 너훌너훌

흰 구름도 아니라네

 

* 오징어잡이를 할 때 켜는 등불. 2,500촉짜리 전구를 한 배에 100여 개 이상 단다고 한다. 어부들은 그 뜨거운 불빛 아래 밤새워 어로작업을 하다 보면 바다가 마치 꽃밭 속인 것처럼,흰 구름 속인 것처럼 착란을 일으켜 바다에 실족해 빠져 죽게 된다는 이야기를 속초 부두의 한 선술집에서 들었다.

 

** `오징어'의 일본식 발음, 즉 いか. 속초 지방에서는 흔히 이렇게들 부른다.

 

피뢰침과 심장, 창작사, 1986

 

 


 

 

김명수 시인 / 찔레 열매

 

 

12월달 어느 날

싸락눈이 내린 오후

어린 아들 함께 산에 오르다가

얼음 덮인 골짜기에

빨간 열매를 보았네

 

황량한 골짜기에

풀잎들은 서걱이고

마른 나뭇가지들도 정적에 싸였는데

긴 겨울 잎 떨어진 찔레덩쿨 위에

서리에도 안 떨어진

그 열매가 눈부셨네

 

이제 겨울 깊어

흰눈 쌓이면

모이 없는 멧새들이 와서 따 먹으리

 

인적 없는 골짜기

빨간 그 열매

모이 없는 꿩들에게 모이가 되리

 

때로는 눈물짓던 내 영혼아

네 바램 어디에 두고 있느냐

 

어느 날 내가 죽어

깊은 겨울 오면

인적 없는 골짜기 모이라도 되랴

 

긴긴 겨울 잎 떨어진 찔레덩쿨 위에

서리에도 안 떨어진

그 열매가 눈부셨네

 

피뢰침과 심장, 창작사, 1986

 

 


 

 

김명수 시인 / 피뢰침

 

 

아득히 솟아 있는 높은 굴뚝 위에

날카로운 은빛 피뢰침 하나

 

캄캄한 구름 하늘 덮을 때

비로소 반짝이는 피뢰침 하나

 

천 번도 만 번도 어두운 밤중에

너는 왜 슬프게도 불타지 않는가

 

온 누리에 번개도 휘몰아 올 때

너는 왜 슬프게도 쓰러지지 않는가

 

뢰침과 심장, 창작사, 1986

 

 


 

 

김명수 (시인. 아동문학가)

1945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남. 안동사범학교 졸업과 대구교대 전문학사 학위를 거쳐 방통대 초등교육학과 학사 학위하고,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교 대학원 독어독문학과 문학석사 과정에서 수학. 197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 1980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 시집 <월식> <하급반 교과서> <피뢰침과 심장> <침엽수 지대> <바다의 눈> <아기는 성이 없고> 등 동화집 <해바라기 피는 계절> <달님과 다람쥐> <엄마 닭은 엄마가 없어요> <바위 밑에서 온 나우리> 외국동화를 우리말로 옮기는 등 아동문학가로도 활동.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1980년에 오늘의 작가상, 1984년 제3회 신동엽창작상과 그 후 만해문학상, 해양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