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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송기원 시인 / 소년수 만동이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3. 18.

송기원 시인 / 소년수 만동이

 

 

열 네 살 난 소년수 만동이가 들어와서

감옥 밖에 있는 그대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취침 나팔이 울리고, 이미자와 최진희의 노래도 끝난 다음에

앞산에는 이제 막 소쩍새도 와서 우는 시간에

열 네 살 난 소년수 만동이가

감옥 밖에 있는 그대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오마니이, 오늘도 못 나갔시요오

 

헤어진 그 동안에 그대는 어느덧 만동이의 어미가 되어

내가 없는 바깥 세상에서, 소쩍새 울음소리도 듣고

만동이가 외치는 소리도 듣고 있습니다.

 

내일은 꼭 나가갔시요오

 

어디, 그대의 아들 만동이만 나간답디까.

그대가 두 귀를 열고 있는 동안에

나 또한 만동이와 함께 나가, 그대 옆에

무더기, 무더기 봄꽃으로 피어오르겠지요.

 

마음 속 붉은 꽃잎, 창작과비평사, 1990

 

 


 

 

송기원 시인 / 수선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예쁜 수선화는

거문도 뒷산 공동묘지에 피어 있습니다.

아무도 찾아주는 이 없는 무덤들 사이

사람 키를 넘는 으악새 덤불 속에

저 혼자서 수선화는 피어 있습니다.

그렇게 예쁜 수선화 앞에서

오늘 노란 투피스를 입은 술집 여자 하나이

멀리 육지로부터 흘러흘러 들어와

몇 방울 노란 눈물로

저 또한 수선화가 되어 피어 있습니다.

 

마음 속 붉은 꽃잎, 창작과비평사, 1990

 

 


 

 

송기원 시인 / 시(詩)

 

 

별 빛 하나에도 우리를 빛낼 수는 있다.

한 방울 눈물에도 우리를 씻을 수는 있다.

버려진 정신들을 이끌고, 바람이 되어

한반도에 스민 잠을 흔들 수는 있다.

춥고 긴 겨울을 뒤척이는 자여.

그대 언 살이 터져 시(詩)가 빛날 때

더 이상 시(詩)를 써서 시(詩)를 죽이지 말라.

누군가 엿보며 웃고 있도다, 웃고 있도다.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 실천문학사, 1983

 

 


 

송기원(宋基元) 시인, 소설가

1947년 전라남도 보성에서 출생. 서라벌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197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회복기의 노래〉와 같은 해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경외성서(經外聖書)>가 당선되어 등단. 저서로는 소설집 『월행(月行)』(1979), 『다시 월문리에서』(1984), 『인도로 간 예수』(1995)와 장편소설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1994), 『여자에 관한 명상』(1996), 『청산』(1997), 『안으로의 여행』(1999), 『또 하나의 나』(2000)와 시집으로 『그대 언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1983), 『마음속 붉은 꽃잎』(1990) 등이 있음. 1983 제2회 신동엽 문학상. 1993 제24회 동인문학상. 2001 제9회 오영수문학상. 2003 제6회 김동리문학상. 2003 제11회 대산문학상.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대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