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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원 시인 / 소년수 만동이
열 네 살 난 소년수 만동이가 들어와서 감옥 밖에 있는 그대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취침 나팔이 울리고, 이미자와 최진희의 노래도 끝난 다음에 앞산에는 이제 막 소쩍새도 와서 우는 시간에 열 네 살 난 소년수 만동이가 감옥 밖에 있는 그대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오마니이, 오늘도 못 나갔시요오
헤어진 그 동안에 그대는 어느덧 만동이의 어미가 되어 내가 없는 바깥 세상에서, 소쩍새 울음소리도 듣고 만동이가 외치는 소리도 듣고 있습니다.
내일은 꼭 나가갔시요오
어디, 그대의 아들 만동이만 나간답디까. 그대가 두 귀를 열고 있는 동안에 나 또한 만동이와 함께 나가, 그대 옆에 무더기, 무더기 봄꽃으로 피어오르겠지요.
마음 속 붉은 꽃잎, 창작과비평사, 1990
송기원 시인 / 수선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예쁜 수선화는 거문도 뒷산 공동묘지에 피어 있습니다. 아무도 찾아주는 이 없는 무덤들 사이 사람 키를 넘는 으악새 덤불 속에 저 혼자서 수선화는 피어 있습니다. 그렇게 예쁜 수선화 앞에서 오늘 노란 투피스를 입은 술집 여자 하나이 멀리 육지로부터 흘러흘러 들어와 몇 방울 노란 눈물로 저 또한 수선화가 되어 피어 있습니다.
마음 속 붉은 꽃잎, 창작과비평사, 1990
송기원 시인 / 시(詩)
별 빛 하나에도 우리를 빛낼 수는 있다. 한 방울 눈물에도 우리를 씻을 수는 있다. 버려진 정신들을 이끌고, 바람이 되어 한반도에 스민 잠을 흔들 수는 있다. 춥고 긴 겨울을 뒤척이는 자여. 그대 언 살이 터져 시(詩)가 빛날 때 더 이상 시(詩)를 써서 시(詩)를 죽이지 말라. 누군가 엿보며 웃고 있도다, 웃고 있도다.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 실천문학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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