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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두석 시인 / 까마귀
쌓인 댓잎 위에서 주워든 새털 공중에 띄워 입김으로 불어 올리기 홀연히 일어난 회오리 바람 바람 속에서 솟구친 까마귀 몇 마리
까마귀들이 원무를 추다 사라진 하늘에서 눈이 내렸다. 언 땅을 디딘 발등으로 내린 눈은 발자국이 되어 뒤에 남았다. 밭머리 수숫대들은 모갱이 잘린 채 섰고 수숫대로 비껴 본 구석방에서 어머니는 자꾸 허리 아팠다. 구들이 타도록 관솔불을 지펴야지, 벌겋게 달아 오른 솔방울을 생각하며 건너간 들판의 한쪽에서는 수십 마리의 까마귀가 떼죽음했다.
쌓인 눈 위에 흩어진 독약.
물망초꽃밭, 1991
최두석 시인 / 노래와 이야기
노래는 심장에, 이야기는 뇌수에 박힌다. 처용이 밤늦게 돌아와, 노래로써 아내를 범한 귀신을 꿇어 엎드리게 했다지만 막상 목청을 떼어내고 남은 가사는 베개에 떨어뜨린 머리카락 하나 건드리지 못한다 하지만 처용의 이야기는 살아 남아 새로운 노래와 풍속을 짓고 유전해 가리라 정간보가 오선지로 바뀌고 이제 아무도 시집에 악보를 그리지 않는다. 노래하고 싶은 시인의 말 속에 은밀히 심장의 박동을 골라 넣는다 그러나 내 격정의 상처는 노래에 쉬이 덧나 다스리는 처방은 이야기일 뿐 이야기로 하필 시를 쓰며 뇌수와 심장이 가장 긴밀히 결합되길 바란다.
물망초꽃밭,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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