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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집의 어른은 진보다] 어떤 장상인가? 김경집 바오로(인문학자) 가톨릭평화신문 2021.03.14 발행 [1604호]
1881년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 근처 베르가모의 작은 마을 소토일몬테의 가난한 소작인 집안에서 태어난 안젤로 주세페 론칼리는 신학교에 진학하지 못할 만큼 가난했다. 훗날 부모님은 장남 안젤로의 사제서품식에 갈 기찻삯이 없어서 참석하지 못할 정도였다. 1905년 안젤로는 로마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사제품을 받은 뒤 베르가모 교구의 새 교구장이 된 라디니 테데스키 주교의 비서 신부가 되었다. 그에게 교회사를 가르친 교수는 당시 근대주의를 배척하던 교회 입장에서 볼 때 진보적인 인물이었으며 나중에 교회에서 파문을 당하기까지 했던 학자였다.
안젤로 신부는 테데스키 주교가 1914년 선종할 때까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주교의 일정을 정하고 모든 중요한 회의에 배석하면서 세심하게 주교를 도왔다. 테데스키 주교는 사회활동에 매우 적극적이었고 특히 노동자들의 삶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었다. 그는 해외이주민과 여성노동자들이 겪는 부조리와 억압 그리고 착취에 대해 분노하고 안타까워했으며 그들을 도울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 그런 주교에게 비서 안젤로 신부는 열정적이고 헌신적이었다. 테데스키 주교와 안젤로 신부는 제련소 노동자들이 파업했을 때 이들을 위해 음식을 마련하고 성금 모금을 교구 신문에 게재하며 동참을 호소했다. 테데스키 주교는 억압받던 노동자들을 위해 자기 반지를 빼서 “도움이 되게 써 달라”며 안젤로 신부를 통해 노동자들에게 주었다. 이 때문에 테데스키 주교는 공산주의자로 몰렸고, 그 비서였던 안젤로 신부에게도 따가운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던 것이 바티칸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파업 사태를 둘러싸고 오간 보수진영과의 논쟁은 시끄러웠다. 보수 신문은 “주교의 자선금은 파업에 대한 축성이며 공공연한 사회주의 문제에 대한 강복”이라며 노골적으로 비난했고, 안젤로 신부는 주교를 옹호하며 그리스도의 특별한 사랑은 권리를 박탈당한 힘없고 박해받는 사람들의 몫이기 때문에 정의의 문제를 위해 일하다 고통받는 이들을 돕는 것은 교회의 마땅한 의무라고 반박했다. 당시 교회는 근대주의를 배척하고 교회의 권위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때였다. 비오 10세 교황은 주교의 처신을 문책하지 않겠다는 서한을 보냈지만, 그 자체가 은근한 경고였다.
비오 11세 시절 안젤로 론칼리 신부는 근대주의 혐의로 라테라노대학 교수직에서 밀려난 뒤 불가리아에 교황청 외교관으로 파견되었다. 신자가 고작 6만 명 남짓한 불가리아로 유배된 셈이었다. 직위를 위해 주교가 되었지만, 그는 바티칸에서 ‘잊힐’ 인물이었다. 불가리아 교회에 대한 바티칸의 무관심은 론칼리 주교를 실망하게 했다. 그는 불가리아 사람들에게 특별한 친밀감을 느꼈다. 론칼리 주교는 불가리아에서 지진으로 붕괴한 정교회 재건을 위해 주교관의 미술품들을 담보로 돈을 빌려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바티칸에서 볼 때는 사고뭉치였다. 골치 아픈 터키로 파견된 것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론칼리 주교는 바티칸의 문제에 대한 인식뿐 아니라 분열된 종교에 대한 안타까움을 경험하게 됐다. 터키에서 유다인 탈출을 돕기도 했다. 1944년 말에는 프랑스 주재 교황청 대사로 파견돼 프랑스 정부와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 헌신했다. 그는 온화한 성격이지만 옳다고 여기는 일에는 단호했다. 나중에 요한 23세 교황이 되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하고 다른 교회에 대한 용서와 화해를 추구했다. 또한, 유다인에 대한 저주의 상투적 기도문을 없앴다. 요한 23세의 판단과 결정은 그의 삶에서 온 것이고 그가 시대정신을 읽어낸 것이었다.
장상이 모든 것을 다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장상이 어떤 인물이냐에 따라 그 조직과 행동은 달라진다. 장상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공부를 했는지, 어떤 활동을 했는지 등은 결코 가벼운 게 아니다. 시대정신을 깨닫고 올바른 길이라면 용기를 발휘해야 하고 미래의제를 통찰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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