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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윤재철시인 / 갈 때는 그냥 살짝 가면 돼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29.

윤재철시인 / 갈 때는 그냥 살짝 가면 돼

 

 

갈 때는 그냥 살짝 가면 돼

술값은 재들이 낼 거야

옆 자리 앉은 친구가 귀에 대고 소곤거린다

그때 나는 무슨 계시처럼

죽음을 떠올리고 빙긋이 웃는다

그래 죽을 때도 그러자

화장실 가는 것처럼 슬그머니

화장실 가서 안 오는 것처럼 슬그머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할 것도 없이

빗돌을 세우지 말라고 할 것도 없이

왁자지껄한 잡담 속을 치기배처럼

한 건 하고 흔적 없이 사라지면 돼

아무렴 외로워지는 거야

외로워지는 가슴

술집을 빠져 나와

낮선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 걸으며

마음이 비로소 환해진다

 

 


 

윤재철(尹載喆, 1953년~ ) 시인

1953년 충청남도 논산 출생,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 1982년 '오월시' 동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 1985년 성동고 재직 시절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소설가 송기원, 시인 김진경 등과 함께 투옥, 해직. 전교조 창립에 핵심적인 역할, 출판사 대표를 맡고 있던 중 복직, 교단에 섰다가 2015년 2월 정년으로 교직에서 물러남. 1987년 첫 시집 《아메리카들소》를 펴낸 후 《그래 우리가 만난다면》《생은 아름다울지라도》등. 1996년 제14회 신동엽창작기금을 받았다. 2013. 제6회 오장환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