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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정 시인 / 움푹 패인 길
성난 빗물이 지나간 곳이, 알 수 없는 환부를 지닌 채 흘러가지 못하고 머뭇거린 곳이, 길이 되기도 한다 웅덩이에 빠진 바퀴를 빼려고 몇 번이나 부르릉거리며 바퀴를 돌려도 헛돌며 웅덩이는 더 깊이 패이는 것처럼 가슴 그 어디쯤에도 길이 패이고 웅덩이가 깊어지는 곳이 있다 이 깊게 패인 곳에 머무는 머뭇거린 마음이 길이 되기도 한다 성난 빗물만 살고 있다는 그대의 가슴에 닿고 싶어서 아픈 내 눈은 그대에게로 넘쳐흘러 갔지만 한번도 그대의 가슴 쪽에 이르지 못해 내 가슴 오래 아팠던 것처럼 오래 앓아 누웠던 시간이 길이 되기도 한다 서로가 알 수 없는 환부를 지닌 채 잠든 마음의 이마를 짚어보며 희고 찬 물수건을 얹어 주고 가는 느리고 따뜻한 손길이 서로에게 고요한 길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가슴 한 쪽이 몹시 쓰리다거나 그립다거나 하는 말들이 무수히 생겨나 사랑한다 말하는 그대가 움푹움푹, 패인 길이 되기도 한다
강미정 시인 / 떨림 -그대에게
젖은 수건 속에 오이씨를 넣고 따뜻한 아랫목에 두었죠 촉 나셨는지 보아라, 싸여진 수건을 조심조심 펼치면 볼록하게 부푼 오이씨는 입술을 달싹이며 무슨 말인가 하려는 듯 입을 반쯤만 열고 있었죠 촉 나시려고 파르르 몸 떠는 것 같아서 촉 보려는 내 마음은 얼마나 떨렸겠습니까 조심조심 수건을 펼쳤던 저의 손은 또 얼마나 떨렸겠습니까 촉 나셨는지 보아라, 아부지 촉 아직 안 나왔슴더, 빛이 들지 않게 얼른 덮어 둬라, 빛을 담기 위해선 어둠도 담아야 한다는 것을 한참 뒤 나중에야 알았지만요 그때는 빨리 촉 나시지 않는 일이 자꾸만 펼쳐보았던 때문인 것 같아서 오래 들여다보았던 때문인 것 같아서 촉 날 때까지 걱정스레 내 마음을 떨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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