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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윤이 시인 / 생은 다른 곳에

by 파스칼바이런 2022. 3. 6.

김윤이 시인 / 생은 다른 곳에

 

 

 아니야 그게 그 거리야, 씨부렁거렸다

 

 비좁은 도시가 형상기억의 잔영 때문에 교란되기 시작했다면

 상가에 비친 광선이 다채롭게 빵빵거렸다면  

 당신이 맞네 거기 있는 거

 

 다시 언급하지만 저 속 비고 저속한 미래의 시네마스코프, 컨버터블에서 몸을 구부리는 서양남자의 동작이 어떤가 당신 아니 나라면?

 

 장막 큰 그림자 새 날았지만 비가 온다는 얘기 듣지 못했네 변덕을 부려? 본래 기상캐스터는 보도를 찍으며 딱딱 빗방울 튕기는 걸세 어제 아침부터 조그만 입으로 많이도 적셨군 그녀 입 틈으로 뚫고 들어가 몸통 납작 끼인 개구리들, 햇볕은 불꽃처럼 균열이 나서 도처에 숨었네 네트워크에 길든 첨탑이 송수신 하느라 높아지고 이 속은 아무도 이주해오지 않는 평화로운 타운이야 하지만 가상공간에 피부색만 감춘다고 인종이 사라지진 않지 단조로운 톤으로 벌컥 하, 마셔봐 흩어지는 신scene이라고, 마지막까지 들었다 놔야지 신통력 부려 정말 착하고 빨간 망토의 소녀를 단세포적으로 내게서 떼고 싶은 날이지 펄럭 하, 덥다 더워 탈진 때문에 내가 꺼내질 지경이야 살의가 느껴져 이를 틈타, 언어의 표층에서 정교한 액션의 구성물로, 진력을 다하여 나에게서 나 돌출시킨다

 

 시나리오가 인간의 기억 어디까지 뻗치는지 보여줘 롱 테이크로 붕새라는 전설의 새는. 지금 날려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씻긴 세상을 비집고… 가아만  

 그림자를 숨죽일 듯 보라  

 커엇 트

 더 큰 승부수 위해 공간을 소생시켜

 

 눈에 비추인 순간 다음 촬영지가 되는 거리

 흑백무성영화 

 

계간 『시인세계』 2011년 가을호 발표

 

 


 

김윤이 시인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트레이싱 페이퍼〉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흑발 소녀의 누드 속에는』(창비, 2011), 『독한 연애』(문학동네, 2015), 『다시 없을 말』(문학수첩, 2019)가 있음. 웹진 『시인광장』 편집장 역임. 현재〈시힘〉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