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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주하림 시인 / 블랙 파라다이스 로리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3. 6.

주하림 시인 / 블랙 파라다이스 로리

 

 

  강에 남자의 신발을 버린 후 로리앵무새를 떠올렸다

  유화의 창을 찢고 날아오는 새

  말하는 것이 그렇게 높게 나는 것을 보고 나는 중얼거렸다

  홀로...외롭게...고독하게 죽는............현실의 반대

  찢어진 티셔츠가 찢어진 팬티가 흘러갔다

 

  가슴에 검은 숲이 지라고 있었다 가슴을 뚫고 검은 나무들이

  그것을 긁으면 무척 슬픈 소리가 났다

  너를 발견한 건 나였지

  하지만 이제 나는 과자를 사러 가야지

  괜찮아 나는 이제 과자 사러 가야지

  그림을 찢고 로리앵무새는 처음에 무엇을 했을까

  자신의 첫 남자를 찾아가 아가씨처럼 말하고 때로는 영감처럼 답했지

  나는 어린 새처럼 y신을 따르고 사랑했어요

  눈을 뜨고 맞았어요

  지울 수 없는 상처와 대답

  외로운 여자아이야 언제부터 얼음 갈리는 기계에 기대어 있었니

  나의 동굴은 낮에도 달을 보고

 

  예전의 꿈은 홀로 외롭고 고독하게 죽지 않는 것이었는데

  이제 그 꿈이 나를 원하고

  꿈의 짧은 여행

  노르망디 해변의 머피베드

  카바나 흰 차양이 휘날리고

  나와 함께 해줘요 내 꿈과 환상 속에

  해가 지는 매일 밤 난 꿈속에서 당신을 기다려요

  난 친구도 돌아갈 집도 없어요

 

 


 

 

주하림 시인 / 우리는 마지막 꿈에 오면 전혀 다른 연인이 된다

 

 그 삼사일을 떠올리면 빗소리로 만들어져 빗소리에 잠기는 집이 생각나고 서로의 기별을 묻지 않는 우리가 그 안에 있다 마치 장난감집을 갖게 된 어린 주인의 힘에 떠밀려 그 곳에 앉아 있는 것처럼, 예전 긴 바다의 주인에게 내가 화판을 옆구리에 끼고 정신에 관해 지껄이던 시절 정신에 관한 것 그런 것은 도무지 쓸모가 없어서

 

 당신의 마음은 나를 허물지 않으려는 해변을 눈치 챌 것이다 아니 눈치 챈 해변이 신기루를 거두어 우리를 작은 테이블에 앉힐 것이다 한숨과도 같은 포옹 나는 이번 생 아닌 곳에서 어떤 미술학교에서 당신을 보았으며 아주 날카로운 인상의 선생으로부터 당신의 연락처를 받기 위해 갖은 고생을 했다는 것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신은 축축한 목젖으로 처음에는 깃털이 그 다음에는 새가 빠져나간 새의 주검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그리고 이 모든 것이 화판이나 정신과 마찬가지로 쓸모가 없었다 내겐 당신뿐이었으므로) 나는 어떤 한량들에게 걸려 밤길에 이가 두 개나 부러진 것까지 이야기하고도 왜 우리를 관두어야 하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비가 오는 방 홀로 두고 온 나의 귀걸이 한 짝과 당신이 들어 올리던 허리와 편지와 리본으로 묶어 둔 빵 당신이 수염을 자르면 밖은 너무 춥고 답답해 당신은 나의 불구덩이 속에서 아무것도 꿈꾸지 않았을까 가령 사랑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해도 당신 집 근처에 큰 저수지가 있어 나는 슬픔에 잠겨 검은 날개를 질질 끌고 돌아다녔지 다음으로 무엇도 읽지 않고 무엇도 고독일 리 없는, 우리는 마지막 꿈에 오게 되면 전혀 다른 연인이 되어 있다

 

-<유심> 2013년 7월호

 

 


 

주하림 시인

1986년 전북 군산에서 출생.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대학원 석사과정 졸업. 2009년 《창작과 비평》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비벌리힐스의 포르노 배우와 유령들』(창비, 2013)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