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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사람 시인 / 새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4. 25.

김사람 시인 / 새

 

 

대구의 하늘은 환멸 뿐이다

세상에 길들여진 것이 아니다

가장 아름다운 깃 하나를

부리로 뽑아 날개에 품었다

오늘도 어느 시인은 무모하게

사랑에 관한 시를 쓰고

희망을 구걸할 것이다

이별과 죽음과 전쟁같이

연인들의 신발 위로

피묻은 깃을 떨어뜨렸다

교정은 꽃잎으로 붐볐지만

학생들의 등에서는 |

엽지는 소리가 들렸다

죽은 자 앞에서 밥을 먹다

그리도 울었던 적이 있다

불안이 엄습해 올 때마다

아름다움은 부끄러움이 아니라며

몇 번이나 붉어진 이마를 만졌다

잃어버린 너를 찾다

새벽녘에야 만난 문장에는

그을린 구름이 묻어있었다

습관적 외로움에 움츠리지 않고 뜨거운 말을 너에게 떨어뜨린 채

노을 밖으로 날아가고 싶었다.

 

 


 

 

김사람 시인 / 인공 사랑

 

 

사랑은 계절에 종속되지 않는다

낯선 곳에 묻히고

미지의 곳으로 날아가는 것도

이 어울리지 않는

고백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

인공적인 마음을 사랑한 너처럼 만나지 말아야 할 것들에

그리워할 권리가 내겐 있다

단 한편의 시를 쓰기 위해

나는 살아났다

슬픈 생각은 식물 같아

사라진 자리마다

내가 자랐고

텅 빈 눈으로 우린

끝없이 어긋났다

바람은 내 앞에 불지 말아야 했다

꽃은 내 앞에 피지 말아야 했다

 

 


 

 

김사람 시인 / 개미집

 

 

개미집에 갇혀

죽어가는

개미들이 있다

 

소녀는 소년을 볼 수 없었다

소녀는 혼자서 어른이 되어 갔다

함께 놀던 공터처럼

 

개미는 집을 지었다

소년은 집을 밟았다

 

개미는 집을 지었다

소년은 집을 밟았다

 

개미는 집을 지었다

소년은 집을 밟았다

 

개미는 소년을

미집으로 만들었다.

 

 


 

 

김사람 시인 / 우리들의 엑소(EXO) 아니면

너희들의 엑소시즘(Exorcism)

 

 

투명한 택시를 탄다

이국어를 하는 드라이버

미터기를 켠다

눈 내리는 아침

길들이 가젤처럼

숨죽인다

 

단어 단어가 잘 들린다

의미를 파악할 수 없다

외국인이 왜 택시를 모는지

이곳 지리는 알고 있을까

영어와 우리말을 섞어가며 생각하다

길을 잃어버린다

 

가슴을 때린다

내가 한때 사랑했던 너는

어느 나라를 떠돌며

사랑을 하고 있을까

 

목적지를 설명하지만

파란 눈을 감춘 금발의 기사는

알아듣지 못하는 척한다

차는 고가도로를 지나고

 

가젤 한 마리가 가로질러 뛴다

눈 속에서 브래지어를 벗는

내가 보인다

지금 신혼여행 중이던가

미터기 숫자가 빠르게 올라간다

오늘은 팬티를 입지 않았다

 

욕망 없는 시가 죄란 말인가

세계를 이탈한 택시

내릴 마음을 내리자

눈은 미터기처럼 멈추지 않고

다리를 벌리고

축문을 읽고 있는 소녀가

백미러에 비쳤다

 

2016년 <공정한시인의사회> 2월호

 

 


 

김사람 (김진호) 시인

1976년 경북 의성에서 출생. 대구교육대학교 음악교육학과. 2008년 《리토피아》를 통해 등단. '리비도' 同人. 시집 <나는 이미 한 생을 잘못 살았다>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