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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제하 시인 / 시인들

by 파스칼바이런 2022. 4. 25.

이제하 시인 / 시인들

 

 

언제 어디서고 기념사진 속에서라면

시인은 다연 군계일학(群鷄一鶴)이다.

사진속의 인물들이 설사

한 무더기 삼성장군 (三星將軍)이거나

논통 노동자 투성이로

떡을 치고 있더라도

 

엿장수 마음대로? 절대로

시인은 시인이기를 그만 둘 …수가

없다. 뒈진 듯하면서도 살아있고

같은듯하면서도 어딘가 다르고, 없는

듯하면서도 언젠가는, 기필코

드러나고야 만다. 어느 시궁창

속에서도, 어떤 누더기 한 복판에서도

 

그것은 실은

아무 것도 아닌 돌의 이름이고

다시 밟혀 죽는 그 꿈이고, 꿈이 깔기는

똥이고, 똥 속에 숨은

 

그 뭣의

똥 …이다

그 뭣의 똥! 그 뭣의 똥!

 

비록 그것이 민족이거나

당대 민중의 주린 허리를 죄는

번쩍이는 버클은 못될지라도

 

나는 쓴다, 만신창이의

자존심을 내걸고

나는 쓴다, 그 보다 더 거덜난

내장과 쓸개를 담보로

 

나는 쓴다, 뒤집혀 맴도는 풍뎅이의 이름으로!

나는 쓴다, 시든 페니스와 쪼그라든 홍합을 위하여!

나는 쓴다, 탈장항문(脫腸肛門)과 고름과 개흙과 검뎅과

나는 쓴다, 곰팡이와 재와

그리하여

채마밭에 뿌려지는

한 무더기 퇴비의 이름으로

 

 


 

이제하(李祭夏) 시인/소설가.

1937년 경남 밀양시 출생. 홍익대 조각과 서양학과 수학. 1958년 '현대문학'에 詩 데뷔. '신태양'에 소설 당선. 196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입선. 소설집 '草食 기차' 기선, 바다,하늘' '龍' 소설선집 '유자약전'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장편소설 '열망' '소녀유자' '진눈깨비 결혼', 시집 '저 어둠 속 등빛들을 느끼듯이' '빈들판' 그 외 다수의 산문집, 콩트집, 화집, 영화칼럼집 발간. 세차례 회화전. 1999년 명지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조각가이면서 소설가/시인/가수 등으로 활동. 2009 동리문학상. 1999 제9회 편운문학상. 1987 한국일보문학상. 1985 제9회 이상문학상 대상. 1955 제1회 학원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