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희 시인 / 모란의 시간
무슨 시간 어느 시간 모란이 핀 시간 무슨 시간 어느 시간 세상 모두 숨 죽여 너도 없고 나도 없고 멀리 모란의 숨결이 불어오는 시간 무슨 시간 어느 시간 한밤중에 홀로 경련으로 몸이 출렁이는 시간 무슨 시간 어느 시간 뭐 이런 시간 뭐 이런 절벽 뭐 이런 벼락 죽을 수도 있는 시간 죽어가는 어떤 시간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숨을 죽이고 꿈틀거리는 심장 홀로 모란만 남는 그런 시간 모르는 숨결이 슬쩍 칼처럼 지나가는 시간 모르는 숨결이 슬쩍 칼처럼 들어오는 시간 무슨 시간 그런 시간 모란이 핀 시간 무슨 시간 그런 시간 망할 놈의 모란이 뚜욱 떨어지는 시간
계간 『열린시학』 2021년 가을호 발표
김승희 시인 / 나를 부수는 나에게
미안하게도 사람이 되기 위하여 사람을 부수는 사람 무엇이 되기 위하여 자기를 부수는 나 이렇게 말하면서 무엇을 말하는 자
미안하게도 사람이 벽으로 보일 때 사람이 빵으로 보일 때 사람이 돈으로 보일 때 사람이 팽이로 보일 때 사람이 바위로 보일 때 사람이 개미로 보일 때 사람이 석류 두개골로 보일 때 이 모두가 결국 하나이고 잠시의 영원
이 모든 것을 품고 넘어야 사람은 사람이 되나 사람을 넘는 사람 미안하게도 사랑을 부수어야 사랑이 되나 뜨거운 매미 울음 끓어 넘치는 이 더운 미친 여름에 무엇이 되기 위하여 자기를 부수는 나 이렇게 말하면서 무엇을 말하는 자
월간 『현대시』 2019년 9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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