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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신미균 시인 / 꽃 청춘 이모티콘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5. 20.

신미균 시인 / 꽃 청춘 이모티콘

 

 

멋대로 살겠다고

집 나갔던 언니가

모처럼 들어왔습니다

 

막무가내로 돈 달라고

엄마의 가슴에

대못을 박기 시작했습니다

옛날에는 엄마의 가슴이 석고처럼

부드러워서 못이 쑥쑥 잘 들어갔는데,

이제는 콘크리트 벽이 되었나 봅니다

못이 튕겨져 나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못대가리에서 불꽃이 튀기는 소리도 들립니다

언니가 못을 박다 자기 손을 내리쳤나 봅니다

아프다고 펄펄 뛰는 소리도 들립니다

콘크리트에 박은 못은 빼기 힘듭니다

나는 마음이 조마조마 해집니다

그렇다고 밥만 축내는 내가 달려들어

언니를 말리기도 힘듭니다

잠시 후, 전기드릴 소리가 들립니다

망치로 안 되니까 더 강력한 걸 가져왔나 봅니다

전기드릴 때문에 집이 흔들립니다

 

참지 못한 내가

전원 스위치를 내립니다

 

갑자기, 나를 발견한 엄마와 언니가 달려들어

대못 나사못 콘크리트못

닥치는 대로 나에게 박아 대기 시작합니다

 

내 가슴은 합판처럼 얇아서

각종 못이 쉽게 잘 박힙니다

엄마와 언니는 있는 대로 못을 다 박더니

각자 자기 방으로 들어갑니다

아픈 것은 둘째 치고

밥값이라도 한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해집니다

 

내일 아침 엄마는 빨간약

언니는 반창고를 들고 몰래 오다가

내 방 옆에서 마주칠 게 뻔합니다

 

뚫린 가슴에서

웃음이 실실 새어 나옵니다

 

- 월간 《현대시 2021년 5월호 -

 

 


 

 

신미균 시인 / 고드름

 

 

꼼 짝 맛

엎 드 렷

쳐다보지 맛

숨도 쉬지 맛

움직이면 찌른닷

 

헤헤

놀라지마

사실은 나

물이야

맹물

 

 


 

 

신미균 시인 / 거짓말

 

 

간단히 입고 벗을 수 있다

일상적인 일을 하거나

조깅 에어로빅을 할 때도

사용할 수 있다

입고만 있어도 땀이 난다

가볍고 튼튼하다

모자가 달려 있어

여차하면 떼어서

남에게 뒤집어씌울 수 있다

우주인의 멋과 색깔도 느낄 수 있다

한번 입기 시작하면

계속 입고 싶어진다

남녀 공용

프리사이즈다

 

- 시집 『웃기는 짬뽕』에서

 

 


 

신미균 시인

1955년 서울에서 출생. 서울교육대학교 졸업. 1996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맨홀과 토마토케첩』(천년의시작, 2003)과 『웃는 나무』(서정시학, 2008), 『웃기는 짬뽕』(푸른사상,  2015), 『길다란 목을 가진 저녁』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