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경 시집 '기우뚱, 날다' 김종경 시인 / 김량장
가설무대처럼 왔다 가는 연정이네 포장마차에 가면 할머니 젖 냄새에 취한다
누군가 끌고 온 반쪽짜리 바다 풍경에도 지독한 멀미를 해야 했다 생선 좌판에서 출렁이는 거친 파도 소리와 홍어찜처럼 곰삭은 세상 이야기 난전의 장돌뱅이 사이를 오가며 갈매기처럼 기웃거리는 날이면, 울컥 낯선 사람들에게 막걸리 한잔 권하고 싶다
오래된 노을이 가설무대 뒤에 쓸쓸하게 서 있고, 굽을 허리를 곧추세운 빈 유모차만 지팡이처럼 앞장서서 파장의 장터를 느릿느릿 끌고 간다
김종경 시인 / 사막 등대
별밤에도 불을 지펴 실크로드 순례자들에게 어둠 속 길을 안내하던 사막의 오아시스
가끔은 사형을 집행하던 절체절명의 전탑이었다는
구원과 죽음의 등불이 동시에 타올랐던
사막에도 등대가 있다
김종경 시인 / 유목의 강
강물은 그냥 울면서만 흘러가는 게 아니다 날마다 낯빛이 바뀌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물결 속엔 자갈보다 찰진 근육이 있고 바위보다 단단한 뼈가 숨어서 강물은 이따금 남몰래 벌떡 일어나 걷다가 뛰다가 혹은 모래처럼 오랫동안 기어, 기어서라도 바다로 흘러가는 것이다
김종경 시인 / 순간
삵이 다가오자 물 밑의 세밀한 근육들부터 파르르 떨렸고 오리와 두루미들이 먼저 시퍼렇게 질려 날아갔다
그 하늘 흔들리던 구름에 깜짝 놀란 피라미 새끼들 한 방향으로 몸을 쓰러뜨려 일제히 발광하는 눈부신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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