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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허영엽 신부가 만난 사람들] (9) 한비야 (비아)

by 파스칼바이런 2022. 2. 3.

[허영엽 신부가 만난 사람들] (9) 한비야 (비아)

국제구호활동가 한비야 “하느님이 저를 업고 다니느라 힘드실거예요”

가톨릭평화신문 2022.01.23 발행 [1647호]

 

 

 

▲ 한비야씨는 긴급구호 현장에서 자신이 위험할 때마다 하느님께서 지켜주신다는 믿음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한다. 평생의 반려자 역시 하느님께서 보내주셨다고 확신한다. 사진은 한씨가 2021년 남편 안톤과 여행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얼마 전 문자 한 통이 왔다. “허 신부님, 안녕하세요? 저는 내일 남수단으로 현장 근무 떠나요. 잘 다녀오겠습니다. 아직도 내전 중인 곳이라 기도 부탁드려요.” ‘바람의 딸’ 한비야(비아) 자매에게 온 연락이었다. 안부 답장을 하자 다시 문자가 왔다. “신부님, 여기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해요. 내전 중인 데다 대형 홍수로 도로가 거의 유실됐어요. 나일 강을 따라 모터 배로 이동해야 하는데, 악어, 하마, 체체파리가 무서운 건 물론, 수중식물인 워터 히아신스가 배의 모터를 감아서 배가 전복되기도 해요. 게다가 반군의 위협까지 ㅠㅠ. 기도를 쎄게(?) 부탁드려요.” 왜 그녀는 위험을 무릅쓰고 항상 그런 곳으로 떠나는 걸까? 문득 과거에 그녀가 한 말이 생각났다. “긴급구호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애절한 눈이 저를 다시 불러요. 그리고 그곳에 가면 정말 하느님이 계셔요. 저의 소명이라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오래 못했겠죠.” 언젠가 강의를 마친 한비야 자매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저는 강의를 정말 수백 번 아니 수천 번은 했을 거예요. 어느 때는 답답해요. 저의 체험의 원천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죠. 구호 현장에서 신비한 체험도 하고 기적도 경험하는데 수강생들은 신자가 아닌 경우가 많아서 오해할 수 있어 조심스럽죠. 그런데 성당에서 강의하면 제 신앙에 대해서 마음껏 이야기해서 아주 속이 시원해요.”

 

▶앞으로의 계획이나 꿈은 무엇인지요?

 

작년 말 10년간 일했던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교장 퇴임식을 했어요. 이화여대 초빙교수직은 2024년에 마무리할 예정이에요. 나는 늘 시간에 쫓기며 살았어요. 그래서 2024년, 만 65세 이후에는 전문분야 활동을 대폭 줄여서 이제는 조금 안 바쁜 한비야로 살기로 결심했어요. 보고 들리는 것들을 충분히 즐기고 누리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잘 될지는 모르지만요.(웃음)

 

▶어린 시절은 어땠나요?

 

자식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는 부모님의 소원이 있었대요. 그때는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세계 지도를 집안 곳곳에 붙여놓으셨어요. 어렸을 때부터 언젠가 세계 일주를 해야겠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했어요. 신기한 건 세계가 크다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그래서 잘나가던 회사 그만두고 세계 일주를 떠나셨네요?

 

33살에 홍보회사를 그만두고, 있는 돈 다 털어서 세계 일주를 떠나게 된 거죠. 처음에는 그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는데, 돈이 안 떨어지네요. 막상 산에 가면 돈 쓸 일이 없잖아요.(웃음) 3년 정도 생각한 세계 일주가 6년이나 걸렸어요. 처음부터 여행 원칙은 “가능한 오지로만, 그리고 육로로만 다닌다”였어요.

 

▶걸어서, 더구나 혼자서, 상상이 안 가는데요?

 

사실은 같이 갈 사람이 없었어요.(웃음) 혼자 가는 게 무서워서 같이 갈 사람을 찾았다면 여태껏 못 갔을 거예요. 눈 딱 감고 나가보니 생각보다 혼자 나온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요즘도 주변에 이야기해요. 기다리지 말고 일단 눈 딱 감고 한 발만 내딛으라고 해요. 남을 도와줄까 말까 할 땐 도와야 하고요, 도전해야 할까 말까 할 땐 무조건 도전해야지요. 놀까 말까도요. 무조건 놀아야죠.(웃음)

 

▶한비야 자매가 쓴 여행기가 유명한데, 여행 중에 어떻게 글을 쓰나요?

 

살면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일기를 쓴 거예요. 지금까지 매일매일 일기를 써요. 저의 책을 보고 눈 밝은 분들은 “일기장 읽는 것 같다”라고 하는데요, 실제로 일기장 맞아요.

 

▶여행하면서 긴급구호에 대해서 알게 되신 거죠?

 

여행하지 않았으면 긴급구호에 관해 몰랐을 거예요. 여행하면서 신기한 일과 위험한 일, 그리고 가슴 아픈 일을 많이 겪었어요. 특히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의 가난한 지역을 다닐 때 아이들이 죽는 걸 많이 봤어요. 아이들이 눈앞에서 순식간에 쓰러져 죽는 거예요. 그런데 아이들이 죽는 이유가 복잡한 희귀병 때문이 아니라 설사, 말라리아, 기관지염으로 인한 폐렴이에요. 1000원짜리 알약 하나면 다 고칠 수 있는데 너무 안타까운 거죠.

 

▶긴급구호 현장의 비참함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긴급구호 현장에 가면 어떤 이들은 완전히 믿음을 잃어버려요. ‘하느님이 계신다면 왜 이렇게 악을 방치하고 계시나?’ 하는 생각에 믿음이 흔들려요. 라이베리아나 시에라리온 같은 곳엔 팔다리 잘린 아이들이 많아요. 아이들이 크면 적군이 된다고 생각하고 팔다리를 잘라버려요. 저도 흔들렸을 때도 많았어요.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어 극복했어요. ‘이 순간 가장 슬퍼하실 분은 하느님이다. 하느님이 이 순간을 보고 정말 같이 울어주고, 같이 옆에 있어 주라고 우리를 보냈구나.’

 

▶주제를 조금 바꿀까요. 늦은 나이에 결혼하셨어요.

 

나이 60에 결혼을 했어요. 네덜란드 사람, 이름은 안톤이에요. 저도 나름대로 열심히 배우자를 만나게 해달라는 기도를 엄청 많이 했어요.(웃음) 하느님께 조르다가 지쳐서 ‘하느님 알아서 하세요’라고 했지요. 그러다가 2002년에 남편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처음 만났어요. 그 당시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신참이었고, 남편은 제가 속한 긴급구호팀의 팀장이었어요. 우리는 당시에 서로 바빴고 인연이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제가 UN 자문위원이었을 때 제네바에 자주 출장을 갔는데 그때 안톤이 제네바에서 근무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자주 만나게 되면서 연인이 되고, 약혼하고 드디어 결혼했어요.(웃음)

 

▶남편 안톤은 어떤 사람인가요?

 

안톤은 아주 열심한 천주교 신자예요. 거의 수도사 같아요.(웃음) 매일 규칙적인 기도를 하고 매주 금요일 금식하는 유럽의 구교 전통을 지키는 사람이에요. 하느님께서 제 신앙을 성숙하게 해주시느라고 이런 사람을 붙여주셨구나 생각했어요.

 

▶두 분은 어디서 생활하고 계시나요?

 

우리는 좀 특별한 형태의 결혼생활을 하고 있어요. 아직은 각자 일도 많고 해서 안톤이 한국으로 와서 3개월 같이 살고, 제가 네덜란드에 가서 3개월 살고. 그리고 6개월은 각각 떨어져서 일하면서 시간을 내서 중간에 만나서 여행해요.

 

▶특별한 부부생활을 하시네요.(웃음)

 

상의해 보니 이것이 최선의 방법인 거 같아요. 왜냐하면 제가 여기서 하는 일을 다 그만두고 네덜란드로 갈 수는 없고, 남편도 이 분야에서는 전설 같은 사람인데 한국에 나밖에 아는 사람이 없잖아요. 아직도 할 일 많은데 여기서 살라는 건 너무 가혹하잖아요.

 

 

▲ 한비야씨(가운데)가 2021년 명동에서 강의 후 허영엽 신부, 청년봉사자들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어떤 기도를 많이 하세요?

 

정말 긴급구호 현장에서 기도밖에 매달릴 게 없어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까요. 어떤 때는 대전차 지뢰를 밟은 적이 있어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요? 하느님이 제가 위험할 때마다 저를 업고 다니신 거라 믿어요. 사실 두렵고 무서울 때도 많아서 구마 기도를 많이 해요.

 

▶구마 기도요?

 

네, 성경에서 악의 세력을 예수님께서 쫓아내시는 걸 흉내 내서 기도해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두려움의 세력아 물러가라!” 그렇게 크게 여러 번 외치면 정말 마음이 순식간에 평안해져요. 사실 죽음도 삶도 다 주님 안에 있는 거잖아요,

 

그녀와의 인터뷰를 지면 사정으로 10%도 못 담았다. 나중에 전문을 나의 페이스북에 올리려 한다. 인터뷰 끝에 그녀가 한 말이 무척 인상적이다. “외국에서 직업이 뭐냐고 물으면 한 가지로 이야기해요. “I’m a humanitarian, assistant, practitioner. humanitarian, 인류애를 가지고 지금 당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그 일을 지금 하는 사람. 저는 그 말을 할 때마다 그냥 가슴이 터져서 죽을 것 같아요. 멋지지 않아요?”(웃음)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