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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장일범의 유쾌한 클래식] (34) 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 ‘엘리야’(하)

by 파스칼바이런 2022. 2. 4.

[장일범의 유쾌한 클래식] (34) 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 ‘엘리야’(하)

불처럼 일어난 엘리야 보며 주님 찬양

가톨릭평화신문 2022.01.23 발행 [1647호]

 

 

오라토리오(Oratorio)는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기도소(Oratorium)에서 나온 음악 용어다. 세속적인 오페라와는 달리 성경을 소재로 하는 종교 음악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페라처럼 화려한 무대나 의상을 요구하지 않고 오케스트라가 무대 위에 있다. 오페라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공연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에 빚에 쫓기던 헨델은 오페라 대신 오라토리오로 장르를 전환했다.

 

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 ‘엘리야’를 들어보면 바흐의 수난곡과 헨델의 오라토리오의 영향이 짙게 느껴진다. 낭만주의자이지만 바흐를 부활시킨 신고전주의자이기도 했던 멘델스존의 음악에 대한 왕성하고 폭넓은 소화력을 체험케 한다.

 

1838년부터 오라토리오 엘리야의 초안 작성과 토론을 계속 해오던 멘델스존은 드디어 1845년 영국 버밍엄 페스티벌에서 오라토리오 작품을 부탁받자 작곡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1년밖에 남지 않은 일정이었지만 멘델스존은 열정적으로 이 작품에 매달렸다. 완벽주의자인 그는 독일어 대본을 영어로 번역한 바톨로뮤와 서신을 끝없이 주고받으며 중요한 영어 단어의 강세에 따라 반주부를 다시 수정하고 최상의 음악적 표현을 위해 힘을 아끼지 않았다.

 

멘델스존은 1846년 8월 26일 영국 버밍엄 페스티벌에서 2000명의 청중 앞에서 자신의 지휘로 감동적인 역사적인 초연을 했는데 무려 네 곡의 합창곡과 네 곡의 독창곡이 앙코르 요청을 받았을 정도로 대성공을 거뒀다.(당시에는 곡 중간에도 앙코르를 받았다.) 이 공연으로 멘델스존은 영국에서 바로크 시대에 헨델이 누리던 인기에 버금가는 인기를 얻었으며 작곡가로서 최정점을 누리게 된다.

 

하지만 꼼꼼하고 세심한 작곡으로 쌓인 피로에 건강을 크게 해친 멘델스존은 사랑하는 누나 파니 멘델스존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아 1년 후인 1847년 11월 4일 38세에 하늘나라로 가게 된다. 엘리야의 성공 이후 멘델스존은 자신의 세 번째 오라토리오 ‘그리스도’를 완성하지 못한 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1탄 사도 바울, 2탄 엘리야, 3탄 그리스도 이렇게 3개의 작품으로 자신의 신앙고백을 완성하려던 뜻은 이루지 못했지만 엘리야는 구약성경에서뿐만 아니라 멘델스존의 작품을 통해 음악사에 찬란한 빛을 발하게 되었다.

 

엘리야는 1846년 초연한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1930년까지 매년 공연이 되었을 정도로 인기를 누리는 오라토리오가 되었으며 헨델이 18세기에 작곡한 ‘메시아’와 비교해 ‘19세기의 메시아’라고 불리기도 한다.

 

2부는 이스라엘왕 아합과 이제벨 여왕의 복수를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는 아리아 ‘들어라, 이스라엘아’로 시작한다. 아합왕은 이제벨에게 카르멜 산에서 3년 만에 큰비를 내리게 한 엘리야의 기적과 바알 예언자들을 칼로 모두 죽인 일을 들려주자 이제벨은 사람들을 선동해서 엘리야를 죽이려 한다. 엘리야는 이 소식을 듣고 두려워 광야로 도망치며 “주님 이것으로 충분하니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를 부른다. 그러자 천사들이 격려하며 엘리야를 하느님의 산 호렙으로 가게 한다. 거기에서 주님을 만난 엘리야는 불 말이 이끄는 불 수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합창 ‘그때 엘리야 예언자가 불처럼 일어났다’가 극적으로 울리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면서 오라토리오 엘리야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QR코드를 스캔하시면 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 ‘엘리야’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_35Io8O7uAk

 

 


 


장일범 (발렌티노) 음악평론가

CPBC 평화방송 ‘장일범의 유쾌한 클래식’ 진행자, 음악평론가,서울사이버대학교성악과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