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엘의 순례일기] (52) 부제반 순례(상) 서품식의 절정은 “예, 여기 있습니다”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가톨릭평화신문 2022.01.23 발행 [1647호]
▲ 부제들이 예루살렘에서 주님 수난을 묵상하며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새해의 첫 달을 맞아 교구와 수도회별로 사제 서품식이 줄지어 거행되고 있습니다. 마산교구에서 제주교구까지 서품식이 이어졌고, 다음 주에는 서울대교구에서도 새 사제가 탄생됩니다. 오랜 기간 성소를 키우고 가꾸어 온 그들이 하느님과 교회 앞에서 평생 ‘주님의 종’으로 살아가기로 서약하는 순간은 언제 보아도 경건합니다. 서품 전, 부제들은 이마를 땅에 댄 채 바닥에 엎드려 있고 함께 참여한 교회 공동체가 웅장하게 ‘성인 호칭 기도’ 노래를 부르는데, 그 모습은 모든 신자의 마음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킵니다. 아버지 신부님(신학교나 수도원에 들어갈 때 추천서를 써주었던 신부님으로 성소자에게 멘토 역할을 해주신다)께서 다가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걸친 영대를 목덜미 뒤부터 양쪽 가슴으로 평행하게 내리며, 갓 서품된 새 사제에게 제의를 입혀주는 모습 역시 감격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전례학을 전공하신 은사 신부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품 전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어디인지 여쭌 적이 있습니다. 수품자가 엎디어 기도할 때이거나, 교구장 주교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서약을 약속할 때이거나, 혹은 아버지 신부님께서 제의를 입혀주는 순간일 것이라 짐작하면서 말입니다. 그도 아니면 서품된 후에 공동체를 향한 첫 강복의 순간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쓸모있는 질문을 한다며 미소를 지으신 신부님께서는 전혀 다른 답을 주셨습니다.
“서품식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자신의 이름이 호명된 후 서품 예정자가 대답하는 때야. ‘후보자 호명’이라고 할 수 있는 순간이지. 교구 서품식에서는 신학교 학장 신부님께서 서품 대상자를 한 명씩 호명해서 주교님 앞으로 나오게 하는데, 자리에 앉아있던 부제는 자신의 이름이 불리면 일어나 앞으로 나가면서 큰 소리로 대답해.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전례에서 일어서는 동작은 내가 묶인 자가 아니라 자유인이라는 것을 표시하는 상징이야.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의미지. 그러니까 자리에 앉아 있던 부제가 일어서면서 내가 여기 있다고 말하는 일은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에 답하기로 서약하는 이 순간과 앞으로의 삶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것,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로 결정한 일이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선택한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을 하느님과 공동체 앞에서 선언하는 의미가 있는 거지. 바로 그 순간이 서품 전례의 시작이자 가장 중요한 순간이야.”
뜻밖의 대답이었습니다. 사소해 보이는 전례 동작이 가진 의미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서품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서품 예정자의 ‘응답’이라는 것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무한한 사랑으로 내리시는 은총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응답이 중요하다는 것과 교회의 신앙과 교리가 스며들어있는 전례의 모든 부분에는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다시금 곱씹게 되었습니다. 전례의 중요성에 대해 여러 권의 저서를 집필한 Susan J. White는 모두가 ‘전례적 인간’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면서, 전례에 자주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거룩함에 다가서는 일이며 ‘전례는 하느님의 거룩한 행동의 인간적인 표현’이라고 정의하기도 했습니다.
십수 년 전부터 우리나라의 여러 신학교에서는 부제의 이스라엘 순례를 학과의 마지막 관문으로 배정했습니다. 모든 신학 과정을 끝내는 시점에 신앙의 원천인 이스라엘을 순례하면서 거룩한 부르심에 대해 확고한 대답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겠지요. 교회 기관에서 운영했던 여행사에서 일하면서 부제반 순례를 책임지게 되었던 것은, 제게 있어 큰 도전이자 기쁨이었습니다. 많은 신부님께서 농담처럼 말씀하시듯 서품 직전의 부제는 주님을 향한 가장 열렬한 사랑으로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함께 순례를 잘 마친 기쁨을 안고 서품을 준비하게 되었다는 인사를 전해 들을 때면 제게도 큰 기쁨이 찾아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코로나 이후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부제반 순례가 어서 재개되기를 바라봅니다.
제가 처음 부제반 순례를 맡게 된 때였습니다. 담임 신부님과 전반적인 일정에 관해 이야기를 마친 상태에서 설명회를 하기 위해 신학교를 찾았습니다. 제가 다니던 이십여 년 전과 별반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건물이 여럿 들어섰고 맨땅이었던 운동장은 인조 잔디로 덮여있었지만, 성모상을 중심으로 정원을 돌며 산책하는 교수 신부님의 모습이나 누구든 학교를 찾은 손님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신학생의 관습은 여전했습니다. 수십 번이나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후에야 저는 강의실에 모인 부제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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