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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하보경 시인 / 새의 감정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7. 1.

하보경 시인 / 새의 감정

 

 

듣고 있나요?

조용히 혼자 만지는 비의 세계

 

걷다가, 뛰다가

날아오를 수 있어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없었던, 하얀 혹등고래처럼

외롭고 귀한 새

그런 새의 소리

오늘은 없고

어제는 있던 표정을 말해요

크게, 더 작게

 

멀어지라고 하더니

또 가까이 오라고 하더니

별빛이 흘러내리는 것도 아니고

달빛이 춤추는 것도 아니고

사방팔방으로 너울너울

그림자도 아니고

그늘도 아니고

그도 아니고

나도 아닌

어떤 새의 모양

그저 꽃바람에 듣고 있지요

시작에서 시작으로

끝에서 끝으로 가는 감정

내 것이 아닌 감정

흰 구름으로, 먹구름으로 피어오르다

사라지는 감정

다시 모이는 감정

내 것인 감정

내 것이 아닌 감정

어느 새의 감정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빗방울처럼

 

- <시사사> 2018년 9-10

 

 


 

하보경 시인 / 유기견

 

 

뻐끔, 뻐끔 출렁이는 눈동자

하늘로 날아가는 물고기

쏟아지는 지느러미, 새의 날개

 

툭툭,

돌멩이를 차듯 계단을 내려온다

낯선 계단

낯선 골목

 

그림 안에서 우리의 그림자는 자유로워

네 하얀 손의 그늘도 자유롭지

 

우연히 산 파란 장화

구불구불한 길

부풀부풀한 길

 

살아서 숨을 쉬는 물소리의 눈빛들

핏빛과 풀빛의 차이

 

물의 그늘에서 풀려나오는 발음들

쏙 내민 입술에서 춤을 추는 발음들

잊혀진 목소리 하나 주우러 갈 때

뒹굴뒹굴거리는 붉은 뺨

 

우리가 사라지기 좋은 계절

 

 


 

하보경 시인

서울에서 출생.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문학석사. 2014년 《시사사》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2020년 《시사사》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