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노 시인 / 바그다드에서 하룻밤
사막에서 잠을 알아 그 밤이 얼마나 깊고 찾아오는 꿈이 푸른지를
낯선 곳에서 하룻밤이란 말이 얼마나 낭만적이냐고 질식당할 것만 같은 세상을 지났으며 또 목말라 타 죽을 것 같은 사막을 지나 붉은 해바라기가 핀 바그다드에서 하루, 그리고 하룻밤 바그다드를 즐기고 바그다드 밤을 느낀다는 것은 새로운 이념을 만들고 새로운 혁명을 꿈꾸는 것 바그다드에서 연인과 사랑도 좋지만 창밖에 뜬 바그다드의 별을 바라보고 모래 바람을 이긴 바그다드의 노래가 주문처럼 들려오는 바그다드의 밤에 이끌려 그 때서야 연인과 사랑이 바그다드태양보다 더 뜨거우면 후회 없고 바그다드에서 하룻밤이 정말 좋은 것은 바그다드 밤의 창에 어린 나를 보는 것이기에, 멀리 떠나오자 비로소 내가 찾은 나를 보기에 바그다드 밤에 한 잔의 술을 마시고 목마와 숙녀처럼 더 깊은 사막으로 떠나도 좋은, 떠난다는 것은 오아시스를 찾는 것이 전혀 아니라 오아시스를 건설하러 가는 것, 그것이 도리어 사내다운 낭만이 아니겠어.
바그다드에서 하룻밤 알아, 내가 꽃의 바그다드라 노래한 바그다드에서 하룻밤, 밤이어도 바그다드로 찾아오는 낙타의 노역에 가만히 손 흔들어 위로해도 좋은 바그다드에서 하룻밤 여전히 꽃의 바그다드, 꿈과 사랑의 바그다드, 그리움의 바그다드 우연히 너도 바그다드로 여행 오고 정말 우연히 너를 만나고 그런 인연의 바그다드에서 한 잔의 술을 나누며 지쳐 버린 인생에 대해 두고 온 세상에 대해 다시 위하여 라며 건배도 하고 거친 손으로 뜯어먹는 크루아상의 부드러운 맛에 취해 미완으로 모래처럼 부서져 내린 청춘과 꿈을 아쉬워해도 좋고 뭐 인생 별 것 있느냐며 술 한 잔 하는 것이지 하며 다 살아버린 듯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은 실은 바그다드의 밤에 다시 담금질하고 무두질해 더 단단한 생으로 만드는 바그다드의 밤이라는 것
사막에서 잠을 알아 사막에서 비로소 푸르러지는 꿈을 그 꿈이 얼마나 깊고 푸른지를
바그다드에서 하룻밤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릴 수밖에 수천수만 갈래 사방으로 길이 뻗쳐있고 수천수만 길이 모여드는 붉은 해바라기 피는 바그다드에서 비로소 깨울 칠 길과 삶의 의미 길을 가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 길은 길이 되어주고 의지가 없는 사람에겐 수천수만 갈래의 길은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사막 길을 가야 비로소 낙타의 긴 눈썹이 모래폭풍을 이기는 힘이고 길을 가는 사람에게만 사막여우가 팡파르를 울리듯 울어주고 사막에도 철철 넘쳐나는 달빛, 페어를 설렁 살리며 흘러오는 와디 하여튼 바그다드에서 하룻밤을 알아, 하룻밤을 보낼 꿈이라도 꿔 봤어
우리 붉은 해바라기가 피고 커피향이 좋은 바그다드로 가자 바그다드에서 하룻밤이란 우리 사랑이 발효되는 시간 발효된 사랑이 향기를 풍긴다며 그 향기로 인해 바그다드가 세계가 부드러워지고 핏발선 눈으로 총을 난사하던 무장한 사람이 비로소 총을 놓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생각에 잠길 걸 인간이 인간을 단죄하고 처형하는 것은 신의 영역을 침범한다는 것을 좀 더 우리가 빨리 바그다드에 이르러 사랑의 체인점, 꿈의 체인점 비의 체인점, 그리움의 체인점, 행복의 체인점, 노래의 체인점을 차려 바그다드로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온 모든 사람에게 무료로 제공해도 좋은, 운명을 가르쳐 주는 손금을 보면 누구에게나 손가락 밖으로 사라지는 손금은 바그다드로 향했다는 것을 바그다드에서 하룻밤이란 것은 바그다드에서 악의 피를 잠재우고 새로운 피를 수혈 받듯 새로운 세계인으로 태어난다는 의미도 돼
바그다드에서 잠을 알아 바그다드의 잠으로 비로소 인간다워지는 우리를 하얀 모래처럼 마음의 결이 고와지는 바그다드를
그간 우리란 물고기 잡으러 바다로 가는 낭만고양이를 생각하며 바다로 갈 땐 넘는 언덕의 물결치는 보리밭과 보리 밭 위로 치솟는 종달새의 자유를 꿈꿨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극한 상황을 이겨내고 붉은 해바라기가 피는 바그다드로 간다는 것 전공을 하고 교양을 배우고 책 행간을 모범학생처럼 걸어온 우리 드디어 바그다드로 일탈하듯 간다는 것, 하고 많은 곳 중에 웬 바그다드 끝없이 이죽거려도 바그다드로, 바그다드로 가다가 숱하게 부서져 내려 모래가 된 청춘과 사랑과 그리움과 인생의 포부와 기대와 희망과 미래를 천천히 읽으면 인생의 의미도 깨닫고 앞으로 나아갈수록 끝없이 따라오는 발자국이 내 죄의 흔적임을 알아 가끔 가다가 뜨거운 모래 위에 무릎 꿇고 참회하면 가만히 손잡고 일으켜 줄 사막의 시간
바그다드에서 하룻밤을 알아 바그다드의 잠으로 찾아오는 꿈이 얼마나 깊고 푸른지는 그 꿈으로 우리 기지개 켜며 바그다드 해를 향해 일제히 일어서는 장엄한 바그다드의 아침은
웹진 『시인광장』 2022년 2월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성복 시인 / 파리 외 4편 (0) | 2022.07.07 |
---|---|
함동수 시인 / 그래스 트리 외 1편 (0) | 2022.07.07 |
하재일 시인 / 동쪽 버드나무 아래에서 외 2편 (0) | 2022.07.07 |
안효희 시인 / 너를 사랑하는 힘 외 2편 (0) | 2022.07.07 |
한명원 시인 / 구석이라는 곳 외 1편 (0) | 2022.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