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남 시인 / 아들아, 사랑하는 내 아들아
아들아, 아들아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너에게 흡족히 준 것이 없구나 무언가를 무언가를 네 손에 가득 쥐어 주고 싶은데 나 아무것도 네게 준 기억이 없구나
힘겨운 세상에 상의도 없이 멋대로 데려다 놓고 힘들게만 했지 어미라는 거룩한 이름이 부끄럽기만 하구나 먹이고 입히는 일이야 나만했겠느냐
아들아, 아들아! 이렇게 부르기만 해도 그냥 좋은데 곁에 있으면 천군만마를 얻은 듯 아무런 두려움이 없으니
아들아 어찌 이런 아름다운 인연으로 너 내게 왔느냐 저 높은 대문 웅장한 성 다 지나고 좁고 초라한 나에게로 너 어찌 왔느냐
반듯한 밥상 하나 차려 내지 못하는 주변 없는 나에게 어머니란 성스런 이름도 달아 주고 세상 누구보다 믿고 따라 주며 의지해 주니
아들아, 기쁨으로 떨리는 어미 가슴 보았느냐 너를 안고 네 붉은 입술에 젖 물리던 기억들이 내 생애 행복의 극치였음도 고백하고 싶지만
아들아 너 행여 빚진 마음 들어 버거울까 하여 어미는 한마디 말도 아끼고 싶구나
네가 잘 먹으면 내 배도 부르고 네가 아프면 내 살점 점점이 녹아 내렸 단다
이제 미끈한 나무처럼 잘 자라서 이 어미에게 그늘 주고 열매도 주고 보석보다 값진 뿌듯함을 날마다 내어 주니
아들아, 너와나 모자의 인연으로 만난 이 세상이 너무도 고맙고 아름답구나
아들아 사랑하는 내 아들아
최대남 시인 / 침묵
사랑이 돌아섰다고 사랑이 아니었던 것은 아니다
평생 내 몸이지만 한 번도 볼 수 없는 고독한 나의 등처럼 그의 내면은 얼마나 고독했을까 내게서 돌아섰을 때 그 대신 내가 오래 울었다 비가 조용히 내렸다 매달리다 지친 높은 곳의 물방울들이 영롱하게 떨어져 부서졌다 뒤에서 고독한 등이 서서히 굽어지며 사랑은 끝내 외로운 것이라고 혼자 남는 것이라고 아직은 따듯한 내 딱딱한 등뼈를 고요히 어루만졌다
최대남 시인 / 살면 살수록 세상은 아름다워 고통스럽네
흙속에 몸을 묻고 살기는 마찬가지, 지독하게 화려한 꽃을 피우고도 능소화는 그래도 못내 서럽네
사는 일이 그런게지 사는 일이 그런게지
살면 살수록 세상은 아름다워 고통스럽네 나만 못한 목숨 어디 있을까 잠시전 태어났던 하루살이의 죽음도 성스럽기만 하네
누구도 무엇도 사랑한다고 나 감히 말 할 수 없네 어느것 앞에서도 이 몸 낮기만 해 감히 탐욕구덩이 내 마음속에 그 무엇도 들여놓기 죄스럽네 그대 사랑하는 마음도 교만이었네
이별 슬픔 고통 있어 더욱 빛나는 세상 그속에 존재하는 미물까지도 알고보니 그들은 창조자였네 지엄한 신이 나투신 모습이었네,교만했던 가슴을 눈물이 덮네
살아있는 일이 이토록 애절한 것임을 흙속에 묻혀서도 흙묻지 않는 능소화 지독한 꽃잎을 보네 그앞에서 나비도 날개접고 경건하게 무릎을 꿇네
살면 살수록 세상은 아름다워 고통스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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