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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권순자 시인 / 안개 행적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17.

권순자 시인 / 안개 행적

 

 

울창한 꿈들이

밤새 집단으로 빠져나와

숲속을 거닌다

 

지상을 서성거리는 흰 발들

수만 개

찢어진 마음도 가볍게 들고

 

아득하게 열린 길

보이지 않는 길을 발들이 간다

 

흐느끼는 목소리

도란도란 목소리 주워들고

웅크린 나무들의 가슴을 열어준다

 

곤두세운 얇은 귀를 만지고

핏발선 붉은 눈을 쓰다듬으며

 

부드럽고 촉촉한 입술들이

수만 개

발 따라 어둑한 길

 

뱀처럼 소문 없이

달처럼 부드럽게 다녀간다

 

웹진 『시인광장』 2022년 4월호 발표​

 

 


 

권순자(權順慈) 시인

경주에서 출생. 1986년 《포항문학》에 〈사루비아〉 2편으로 작품 활동 시작, 2003년 《심상》신인상 수상. 시집으로『우목 횟집』,『검은 늪』,『낭만적인 악수』,『붉은 꽃에 대한 명상』,『순례자』,『천개의 눈물』,『Mother's Dawn』(『검은 늪』영역시집), 『청춘 고래』, 『소년과 뱀과 소녀를』이 있음. 현재 한국작가회의 회원, 한국시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