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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윤재철 시인 / 빨간 우체통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17.

윤재철 시인 / 빨간 우체통

 

 

누구에게도

아직 부치지 못한

편지 한 통쯤은 있어

빨간 우체통 거기 서 있다

키는 더 자라지 않는 채

짜장면집 배달통처럼

모서리는 허옇게

빛도 바랜 채

차들 잠시 머물다 떠나는

신호등 앞 길가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

하루 종일 하품하며

그래도 누구에게나

아직 받고 싶은

편지 한 통쯤은 있어

빨간 우체통 거기 서 있다

 

-『서울신문/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윤재철 시인 / 봄사월

 

 

비구니 있던 암자에

비구승이 주지로와

앞마당 화단가

노란 붓꽃 난만하게 피었어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앞산에 뻐꾸기 울고

해는 길어 저물줄 모르는데

비구승은 절 놔두고

뒷산에 토굴 짓는다고

하루종일을 보이지 않는다

 

 


 

윤재철(尹載喆) 시인

1953년 충남 논산 출생,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 1982년 '오월시' 동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 1985년 성동고 재직 시절 민중교육지 사건으로투옥, 해직. 전교조 창립에 핵심적인 역할, 그 후 복직되어 교단에 섰다가 2015년 2월 정년퇴직. 시집 《아메리카들소》 『그래 우리가 만난다면』 『생은 아름다울지라도』 『세상에 새로 온 꽃』 『능소화』 『거꾸로 가자』 등. 1996년 제14회 신동엽창작기금. 2013. 제6회 오장환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