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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기호 시인(김천) / 봄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18.

이기호 시인(김천) / 봄

 

 

어디서 반가운 소식 들려오지 않을까

고개 들어 창밖을 바라보네.

한강이 꽁꽁 얼었다는데 사실일까?

토라진 아이처럼 하늘은 찌푸려져 있고

가로수는 무엇이 좋은지 제멋대로

휘청대며 춤을 춘다.

바람은 신이 난 것처럼 휘파람

휙휙 불며 쏜살같이 지나가고

찾아올 사람 없는 창가엔

묵은 적막이 구름 떼처럼 몰려온다.

어디 가까운 화원이라도 가서

예쁜 화분 몰래 사오면

기다리던 소식 들리지나 않을까?

쇼핑이라도 가서

예쁜 봄옷 몰래 사오면

찌푸린 하늘도 해맑게 웃지 않을까?

창문 너머 반가운 소식

들려오지 않을까?

 

 


 

 

이기호 시인(김천) / 못

 

 

제 몸 한 번 섣불리 내어준 적 없었다.

자존심 강하고, 날카롭고, 예민하였다.

깨어지고, 부러지고

생채기 나는 것이 일생이라

누구를 위해 몸바쳐 사랑해본 적 없었다.

생애 단 한 번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제 몸 함부로 굽히지 않았다.

가난한 자의 침실에

뜨거운 욕망의 사슬로 잉태되면서부터

휘어지고, 퉁겨지고

허공을 날아가는 아픔은 일상이 되고 말았다.

앞을 향해 나아갈수록 고통은 심해지고

물러날수록 되돌리고 싶지 않은 삶이기도 했다.

곧은 기개로 태어난 본성에

바르게 뿌리내리는 것이 정도라는 것쯤은

기질로도 알게 되었다.

멍울이 지도록 상처를 내는 일도

일생을 거쳐 단 한 번은 베풀어야 할

용서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뱃심으로 살아가는 자의 힘겨운 삶을 위해 감히

치러야 할 고마운 흠집이라는 것도

나무처럼 우뚝 서면서 알게 되었다.

 

 


 

 

이기호 시인(김천) / 그리운 이에게 편지쓰기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변죽이 좋은

평소 친숙한 낱말들 불러다 줄지어 세워놓고

근사하게 그럴싸하게 편지를 쓰고 싶다.

그런데 도무지 문장이 되지 않는다.

어찌 된 일인지 다들 줄행랑이다.

아뿔싸, 요즘 좀체 섬기지 않았다고

모른 체 딴청을 부린다.

그냥 나란히 줄 한번 서주면 되는 일을

편지 한 장에 왜 그리 생색들을 낼까?

가장 가까운 몇몇 낱말들은 반드시 불러 세워야 하는데

그래야 이 그리운 마음 전달이 될 것 같은데

아,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을까?

아유, 참말로 한 줄 쓰기도 어렵네.

그냥 부담 없이 서준다면 앞으로는 정말

가깝게 지낼 생각을 하고 있는데

A4용지 한 장이라도 괜찮단 말이야

아니면 나랑 가장 친한 ‘사랑’ 너라도

모른 척 그냥 와주면 안 되겠니?

너마저 딴청을 부린다면 정말 속상할 거야.

친하지도 않은 몇몇을 불러다 어울리지 않게

덕지덕지 줄지어 세워놓으면

그리운 이의 마음이 얼마나 불편하겠니.

내 편지를 받아들었을 때

그냥 스르르 잠이 올 것처럼 포근하고 따뜻한

말벗 삼아온 다정스런 낱말들은

말없이 나를 도와주어야 하는데

아, 고민스럽다…….

정 줄지어 서기가 곤란하면 그냥 안부라도 전하게

맨 앞줄에 웃음이 예쁜

‘안녕’ 너라도 서주면 안 되겠니?

'

 


 

이기호 시인(김천)

경북 김천 출생. 아이비. 제2회 설중매 문학세상 사이버 신춘문예 신인상. 계간 <문학의 향기> 신인상 등단. 제6회 행정자치부 공무원 문예대전 시 부문, '아람문학회 동인'  '시인의 길라잡이' 특별회원 '파라문협 특별회원' '현, 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