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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안차애 시인 / 손가락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0. 8.

안차애 시인 / 손가락들

 

 

심해어의 등지느러미에서 바흐의 평균율 소리가 난다

푸른 매의 날개에 물결의 지문이 돋고,

 

과학자 칼 짐머는 손을 날개라고 불러도 된다고 한다

날개를 지느러미라고 불러도 된다고,

한다

 

박쥐가 서른두 개의 손가락으로 검은 하늘을 펼치면

공동의 기억들이 쏟아질까

손가락이 너무 많아 쏟아지는 검정을 놓칠까

당신의 허리띠를 꽉 잡으려고 손가락들을, 뚝뚝

분질렀던 기억이 있는 거 같다

 

손가락 끝의 촉수가

눈알보다 붉어진 러브스토리가 있는 것 같다

 

박차고 날아오르거나

밀치며 나아가거나

닥치고, 꼭 집어 입안에 밀어 넣는 건

같은 부류의 손가락질

 

우리가 없는 세력을 늘리는 방식이다

 

태초처럼

사라진 당신이 손가락 사이에서 피어오르고,

 

시집 『초록을엄마라고 부를 때』(천년의시작, 2022) 수록

 

 


 

 

안차애 시인 / 달콤한 뼈의 홍루몽

 

 

너무 추워서 잠시 참나무의 붉은 뼈에 듭니다

화끈한 무덤이라도 해도 무방합니다

 

참숯 가마의 온도는

미리 당겨쓰는 불의 노래

한사코 오늘이 붉기를 바라는 주문입니다

 

두 발이 얼고 두 무릎이 식어 갈 때

놀라거나 쓸쓸하거나 검정이 몰려올 때

숨에서 파란 얼음조각이 서걱거릴 때

몇 몇 피붙이의 뼈를 던져 넣었던 연화장 고로의 불빛이라도 끌어옵니다

 

좋은 것은 끝이 나고, 끝이 나야 좋은 것이라는

홍루몽의 혁명성을 생각합니다

붉어서 혁명적인 것이 아니라

붉은 것이 끝내 붉은 것을 환하게 끝장내서 혁명적입니다

 

죽어서는 더는 춥지 않아도 된다니

마지막 땀방울을 기쁘게 미리 흘립니다

남은 뼈가 붉게 피어나는 오늘의 일진日辰,

산두화山頭花의 괘卦는 뜨겁고 사납고 달콤하니까요

 

끝이 나야 좋은 뼈이고,

좋은 뼈는 무덤을 완성합니다

 

계간 『시와 편견』 2022년 봄호 발표

 

 


 

안차애 시인

1960년 부산에서 출생. 부산교육대학 졸업. 200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 대학과 대학원에서 국어교육 전공. 저서로는 시집으로 『불꽃나무 한 그루』 『치명적 그늘』 『초록을 엄마라고 부를 때』와 교육 도서 『시인 되는 11가지 놀이』등이 있음. 2014년 세종우수도서 선정. 문예진흥기금, 문화재단기금 다수 수혜. 한국시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