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 시인 / 눈보라 TV
꿈틀대기 시작하는 지느러미다. 내리다가 내리지 않기(움직이다가 움직이지 않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이야기처럼. 커졌다가 작아지는 눈송이다. 켜졌다가 꺼지는 스위치다. 위로부터 아래를 되감기할 수 있다. 음소거와 최대치의 볼륨으로. 정면에 눈보라가 펼쳐진다. 다시 접힌다. 진눈깨비를 제목으로 쓰는 시. 바깥은 지나가는 너를 눈 위에 새겨놓는다. 눈이 녹고 눈 위에 다시 쌓이는 눈. 저 눈은 너의 유실물이고 다신 되찾지 못한다고 썼을 때. 눈은 정지한다. 멈춰 있는 눈 속에 손을 집어넣고 손안에서 흩날리는 눈을 만진다. 손은 넓고도 광활한 대지. 손은 모든 방향. 눈이 불가능한 손. 어둠을 깨뜨리는 눈이다. 작은 조각들이 정지를 풀어헤치고 움직이는 밤. 점점 많아지는 픽셀이다. 어둠이 일으키는 물결은 물끄러미다. 그 시간은 비를 움켜쥔 눈이고 자세히 들여다보는 눈동자다. 저 눈은 마음이 내리는 것. 두 손을 교차하며 눈이 내리고 있다. 한 손이 다른 한 손의 기슭이 될 때까지
소복소복 마음이 쌓인다
계간 『시마』 제10호, 2021년 겨울호 발표
강주 시인 / 악기惡記*
흑백의 노래를 지닌 침묵의 세 송이로 자라는,
가능한 부피로서의 그것을 인간으로부터 가져와 병이자 치료제로 쓴다. 참조할 수 없는 내·외부로 분할되는 고유한 시간은
각자의 주어
조금도 다르지 않을 앞뒤로 질문하기. 무한히 멀어질 수 없는 자신의 역사로부터 거듭 달아나기. 현실의 무늬에서 무늬의 형식을 찾는 것처럼 탕자의 귀환이 경이로운 이유
왼발과 오른발로 번갈아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하는
지칭물의 태도로 우리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미美에 대해. 추측으로만 가능한 층위를 소멸하는 육체성으로
사라지면서 완벽히 나타날 줄 아는 몸을 다시 말할 때 이해는
환자와 같은 그 외의 순간이 모인 거대한 병동에 지나지 않는다. 영구하며 가장 불행한 한 예로 깊이를 넓이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뼈와 허물
거의 홀로 무릎을 세우기 위해 짧은 자를 드리우며 맑게 갠 기후 속으로
재와 썩은 살과 구더기와
경청하는 몇몇과
*조연호
계간 『시와 반시』 2021년 봄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설희 시인 / 유리창이 달아난다 외 1편 (0) | 2022.11.05 |
---|---|
김명수 시인 / 모자 외 1편 (0) | 2022.11.05 |
서상민 시인 / 둥근 삼각형 외 6편 (0) | 2022.11.05 |
김송포 시인 / 첼로가 된 백남준 외 1편 (0) | 2022.11.04 |
성백선 시인 / 마티에르 외 1편 (0) | 2022.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