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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남주 시인 / 독립의 붓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1. 7.

김남주 시인 / 독립의 붓

 

 

독립의 붓을 들어

그들이 무명베에 태극기를 그린 것은

그 뜻이 다른 데에 있지 않았다.

 

밤을 도와 살얼음이

강을 건너고 골짜기를 타고

험한 산맥을 넘고

집에서 집으로 마을에서 마을로

민족의 대의를 전한 것은

 

일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한 사람이 일어나고

열 사람이 일어나고

천 사람 만 백성이 일어나

거센 바람 일으켜 방방곡곡에

성난 파도 일으켜 항구마다에

만세 만세 조선독립만세

목메이게 한번 불러보고 싶었던 것이다.

 

뺏앗긴 문전옥답 짓밟힌

보리와 함께 일어나

빼앗긴 금수강산 쓰러진

나무와 함께 일어나

왜놈들 주재소를 들이치고

손가락 쇠스랑이 되어

왜놈들 가슴에 꽂고 싶었던 것이다.

 

동해에서 서해까지

한라에서 백두까지

삼천만이 하나로 일어나

벙어리까지 입을 열고 일어나

우렁차게 한번 외치고 싶었던 것이다.

 

만세

만세

조선독립만세!!

 

 


 

 

김남주 시인 /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무엇하랴

콧잔등 타고 내려

입술 위에 고인 눈물 위에

그대 이름 적신들

타고 내려 가슴에서 애를 태우고

발등 위에 떨어진 이슬 위에

그대 이름 새긴들

 

무엇하랴

벽은 이리 두텁고 나는 갇혀 있는 것을

무엇하려

절창은 이리 매정하고 나는 묶여 있는 것을

오 새여 하늘의 바람이여

나래 펴 노래에 살고

나래 접어 황혼에 깃드는 새여 바람이여

 

나에게 다오 노래의 날개를

나에게 다오 황혼의 보금자리를

만인의 입술 위에서 노래가 되기도 하고

대지의 나무 위에서 비둘기의 보금자리가 되기도 하고

압제가가 묶어놓은 세상의 모든 매듭을 풀어

인간의 팔에서 날개가 되고 바람이 되기도 하는

새여 바람이여 자유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시집 <사랑의 무기>에서

 

 


 

김남주(金南柱) 시인 (1946∼1994)

1946년 전남 해남 출생. 전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1974년 <창작과 비평> 여름호를 통해 문단 활동 시작.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15년 형 선고를 받고 9년째 복역 중 1988년 가석방으로 출옥. 1991년 신동엽(申東曄) 창작기금을 수상. 시집 <진혼가 鎭魂歌>·<나의 칼 나의 피>·<조국은 하나다>, 시선집 <사랑의 무기>·<솔직히 말하자>·<마침내 오고야 말 우리들의 세상>·<학살>·<사상의 거처>·<이 좋은 세상에>가 있으며, 산문집 ≪시와 혁명≫, 등. 1994년 2월 13일 췌장암으로 별세(향년 47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