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윤 시인 / 아빠의 기도
신이여, 나의 아이들을 지켜주소서 내 손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들을 그의 몫으로 남겨두지 마시고 당신이 그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주소서
그가 홀로 쓸쓸해하며 들판의 돌과 바람을 벗하며 놀고 있을 때, 신이여 당신의 바쁜 일이 많을지라도 그의 외로움을 돌아보시고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걸 믿게 해주소서
먼 옛날 내가 길을 가다 넘어졌을 때 당신이 손 내밀어 일으켜 주신 것처럼 내 흙장난에 지치고 졸음에 겨워 엄마를 기다릴 때, 당신은 나를 업고 달래며 재워 주셨지요
어쩌면 나의 아이들이 당신을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들을 향해 등 돌리지 마시고 그들의 투정마저도 나의 어린 시절처럼 안아 주소서 당신이 아니면 내 아이들은 언제나 한쪽 담 모퉁이에서 울고 있을 겁니다
서정윤 시인 / 슬픈 시
술로써 눈물보다 아픈 가슴을 숨길 수 없을 때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를 적는다 별을 향해 그 아래 서 있기가 그리 부끄러울 때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를 읽는다
그냥 손을 놓으면 그만인 것을 아직 〈나〉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쓰러진 뒷모습을 생각잖고 한쪽 발을 건너 디디면 될 것을 뭔가 잃어버릴 것 같은 허전함에 우리는 붙들려 있다
어디엔들 슬프지 않은 사람이 없으랴마는 하늘이 아파 눈물이 날 때 눈물로도 숨길 수 없어 술을 마실 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가 되어 누구에겐가 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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