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라연 시인 / 아름다운 너무나
우리가 누린 적 있는 눈부신 시간들은
잠시 걸친 옷이나 구두, 가방이었을 것이나
눈부신 만큼 또 어쩔 수 없이 아팠을 것이나
한 번쯤은 남루를 가릴 병풍이기도 했을 것이나
주인을 따라 늙어 이제 젊은 누구의 몸과 옷과 구두와 가방 아픔이 되었을 것이나
그 세월 사이로 새와 나비, 벌레들의 시간을 날게 하거나 노래하게 하면서
이제 그 시간들마저 허락도 없이 데려가는 중일 것이나
박라연 시인 / 겨울 사과나무를 위하여
제 키를 낮춘 만큼 탐스럽게 열리는 여자의 아이를 위해 앉은뱅이처럼 주저앉으려 하는 당신 온몸을 슬프게 구부리고만 있는 당신을 문득 태초의 어머니라 부르고 싶다 어쩌다가 벗은 몸의 처절한 자태를 나는 보고 말았는지 그때 그 순간은 이미 친숙한 운명이 되는지 내 죽어 한 그루 사과나무로 돌아와야 한다면 더 높이 솟아오르기 위해 숨을 쉬는 나무들 그들이사 짐작도 못 할 따뜻한 수액들을 둥글게 둥글게 공중에 매달아두리 어느 쓸쓸한 가을밤 홀로 눈떠 온몸의 붉은 반점들을 빠짐없이 달디단 사과라 이름 붙이어 놓으리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지월 시인 / 五月 단오 외 1편 (0) | 2022.11.16 |
---|---|
한종훈 시인 / 구멍 난 문장 외 1편 (0) | 2022.11.16 |
문세정 시인 / 바다묘지 가는 길 외 1편 (0) | 2022.11.16 |
김근열 시인 / 도토리 외 1편 (0) | 2022.11.16 |
정호 시인 / 속내 외 1편 (0) | 2022.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