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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부온 프란조(Buon pranzo)!] 11.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①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13.

[Buon pranzo!] 11.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①

카롤 보이티와, 빈곤 속에서도 음식 나누며 동료들을 보듬다

가톨릭평화신문 2022.08.14 발행 [1674호]

 

 

 

▲ 하늘에서 본 교황의 여름휴양지 가스텔 간돌포와 알바노 호수.

 

 

▲ 2002년 7월, 가스텔 간돌포 접견실에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한 젊은이를 만나 얼굴을 쓰다듬어 주고 있다. 이 젊은이는 당시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리게 될 세계청년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교황께 요청했다.

 

 

1984년 여름, 로마에서 동남쪽으로 30㎞가량 떨어진 교황의 여름휴가지 가스텔 간돌포(Castel Gandolfo)에서 뵈었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멀리서 뵐 수 있는 성 베드로 광장 같지 않은 그곳은 분화구의 아름다운 알바노 호수 언저리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있다. 가까이서 교황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마냥 설레었다. 왜냐하면, 그해 5월에 103위 한국 순교자 시성을 위해 교황이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나의 고향을 다녀온 교황에게 “내가 바로 한국인이에요!” 하고 증명하고 싶었다. 나는 급하게 도화지에 ‘코레아’(Corea)라고 써서 그곳으로 달려갔다. 각 나라 순례자들로 이미 빽빽하게 채워진 광장에서 종이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교황은 기도와 강론이 끝나고 광장에 모인 모든 신자를 둘러보다가 동양 아이가 들고 있는 작은 종이에 쓰인 코레아(Corea)를 본 것이다. 아, 그분의 시력이 초인 수준임을 알게 된 것은 그때였다. 내 귀를 의심했다. 교황은 “찬미 예수, 찬미 예수!”로 나에게 인사를 건네주었다. 그때 그 감동을 난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고 잊을 수가 없다.

 

1978년 첫 번째 슬라브계 교황으로 뽑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우리 곁을 떠난 지 17년이 지났다. 그 사이 그는 성인품에 올랐고, 우리는 그를 ‘성 요한 바오로 2세’라고 호칭하며 그에게 우리를 위한 기도를 간구한다.

 

동방에서 온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San Giovanni Paolo II, 재위 1978∼2005), 본명 카롤 유제프 보이티와(Karol Jzef Wojtyła, 폴란드어 표기)는 제264대 교황으로, 네덜란드인 하드리아노 7세(1522∼1523) 이후 455년 만에 탄생한 최초의 외국인(비이탈리아인) 교황이었다. 또한, 첫 번째 슬라브계 교황이었고, 성 베드로와 비오 9세에 이어 세 번째로 재위 기간이 길었던 교황이다. 재위 26년간 104번의 여행을 통해 127개국에 사도 순방을 하였는데 연장거리가 116만 3865㎞로, 지구에서 달까지 3번, 지구 24바퀴를 돈 셈이었다. 그는 재위 기간에 두 번의 희년과 14개의 회칙을 발표했다. 스포츠 마니아로 등산과 스키, 조정, 축구에 대한 열정이 컸다. 또 그는 아름다운 시와 희곡을 썼으며, 자신의 사목적 사명을 사랑했고, 민족과 국가, 종교 간 대화와 형제애로 이해의 포용을 구축하기 위하여 세상으로 향한 문을 열고 손을 내밀었다. 1976년 10월 16일, 교황에 피선되자마자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수많은 이탈리아인 앞에서 “만약 제가 이탈리아어를 잘못 말한다면 고쳐주세요” 하고 말함으로써 순식간에 그들의 마음 안에 들어갔다. 평화와 일치 운동, 자선에 대한 굳건한 의지와 사랑이 그의 노선이었다.

 

 

▲ 1946년 11월 막 사제품을 받았을 무렵의 카롤 유제프 보이티와 신부.

 

1920년 폴란드 바도비체에서 태어나

 

1920년, 폴란드 크라쿠프 바도비체에서 그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제1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뒤여서 식량뿐 아니라 상품도 부족했고, 절대적 빈곤이 몰아치던 시기였다. 그러한 빈곤 속에서, 아마도 당시에는 폴란드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양배추와 양파 수프가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데울 최선의 먹거리였을 것이다. 경제와 금융 위기가 불어닥친 1929년 그해, 그가 9세였을 때,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몇 년 뒤 형까지 병으로 세상을 등졌다. 그의 19세 생일에 나치는 그의 고국 폴란드를 침략했다. 그가 공부하던 크라쿠프대학은 문을 닫아야 했고, 그는 다른 젊은이들과 1940년부터 1944년까지 채석장에서 노동을 강요당했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그는 자신이 먹을 것을 동료들과 함께 나누었고, 항상 위트와 농담으로 주변을 보듬고 위로해 주었다고 한다. 보이티와는 음식과 특별한 관계, 거의 영적인 관계로서 나눔, 의사소통, 기쁨을 가졌고, 단순하고 소박하며 검소한 요리를 먹으며 보냈다.

 

1946년 추운 11월, 막 사제품을 받은 크라쿠프의 26세 청년 사제 보이티와는 ‘영원한 도시(Citt Eterna)’ 로마에 도착한다. “그는 정말 몹시 말랐어요. 정말이에요. 그러나 다부져 보였어요. 강인해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온유하고 늘 미소와 함께 수용적인 친구였답니다”라고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마리아 메히아(Jorge Maria Mejia, 1923~2014) 추기경은 기억한다. 메히아 추기경은 1946년 말에서 1948년 여름까지 보이티와와 같이 교황청립 성 토마스 아퀴나스대학(안젤리쿰, Pontificia Universit di San Tommaso d’Aquino “Angelicum”)에서 같이 수학했다.

 

당시 보이티와의 눈에 비친 로마는 전후 복구를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도시였다. 난방도 되지 않았고, 음식도 부족했다. 보이티와는 적게 먹고, 교회의 검소한 음식을 알아가게 되었다. 즉 ‘파스타는 많이, 고기와 생선은 적게, 치커리아 커피(Caff di Cicoria, 전쟁 중 커피 대신 치커리아 뿌리를 볶은 뒤 우려서 커피 대용으로 마셨던 커피)로!’ 음식은 소박했으나, 그가 살았던 벨기에 기숙사는 대통령 궁(Palazzo Quirinale)의 마니카 룽가(Manica Lunga) 앞에 위치한 아름다운 곳이었다. 어쩌면 춥고 빈곤했던 데 대한 보상이라도 받은 듯 말이다. 눈도 많이 내리고 다들 우울해 보이던 그해 성탄, 보이티와는 멋진 바리톤 음색으로 폴란드 성탄 노래를 부르고, 아름다운 시를 읊어주며 친구들을 달래 주었다. 그는 열심히 신학을 공부하며 하루 일과를 보냈고, 영성 수련과 함께 사제로서의 삶을 충실히 이어나갔다. 강의에서 자유로워지는 날에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Giudizio Universale)이 있는 시스티나 성당(Cappella Sistina)에 가거나 성 베드로 대성전과 베드로 성인과 교황들의 무덤이 있는 카타콤바(Catacomba)를 순례하였다. 당시 그는 나치 치하에서 살아남은 유다인들이 자신들을 숨겨주고 도와줬던 비오 12세 교황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걸 보고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훗날 고백한다. 보이티와도 폴란드의 유다인 친구들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것을 보았으며, 그들의 비극을 함께하며 도왔기 때문이다. 나중에 교황이 된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런 인연 때문인지 1986년 4월 13일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로마의 시나고가(sinagoga, 이탈리아어) 유다교 회당(Tempio Maggiore di Roma)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1984년과 1989년 두 차례 한국 사목방문

 

카롤 보이티와, 요한 바오로 2세! 그는 우리 각자에게 추억을 안겨 주었다. 그는 먼 수세기 전 교황이 아니다. 1984년과 1989년, 두 번이나 우리나라를 다녀간 분이다. 나는 낡은 구두와 해진 옷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그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다.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 안에서 조국을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하고 자신의 삶과 소명을 사랑한 한 인간이었던 젊은 날의 보이티와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너무도 좋아했던 크레무프카(Kremowka)를 소개하고 싶다. 그가 이 단순한 케이크를 얼마나 좋아했으면,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친구들과 누가 가장 많이 먹을지 내기를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보이티와는 무려 18개를 먹었으나, 그 내기에서 승자의 영광은 주어지지 않았다. 1993년 6월, 교황으로 폴란드에 사목방문을 갔을 때, 고향 바도비체의 과자 가게를 찾았지만, 불행히도 그 가게는 없었고 그 가게의 풍미를 간직한 크레무프카(Kremowka) 레시피도 사라졌다고 한다. 바티칸에서 폴란드 수녀들이 가끔 이 케이크을 만들어 교황의 향수를 달래주었다 한다. 나도 이 크레무프카를 맛있게 만들어 교황께 올리고 싶다. “부온 아페티토!(Buon appetito, 맛있게 드세요!)”

 

 

레시피/ 크레무프카(Kremwka, 교황의 크림 케이크)

 

▲준비물 : 페이스트리(Pastry) 2장, 우유 2컵, 달걀 노른자 2개, 설탕 100g, 옥수수 전분 40g, 바닐라 에센스 1티스푼, 분설탕(Powdered Sugar, 슈거파우더).

 

→페이스트리는 포크로 구멍을 촘촘히 낸다. 갈색이 나도록 180도에서 15분, 뒤집어서 10분 굽는다.

 

→우유를 설탕과 바닐라를 넣고 데운다. 다른 볼에 옥수수 전분과 달걀 노른자를 넣고 섞는다.

 

→데워지고 있는 우유에 전분과 달걀 노른자를 잘 섞은 것을 한 스푼씩 넣어가며 덩어리지지 않도록 저어주고 눌어붙지 않도록 1분간 센 불에서 끓이고, 차갑게 식힌다.

 

→크림이 식으면 퍼프 페이스트리(Puff Pastry) 시트 중 하나에 펴 바르고 두 번째 시트로 덮는다.

 

→사각으로 자른 다음, 접시에 담고 분설탕을 뿌린다.

 

▲모니카의 팁: 설탕량은 좀 줄여도 좋다. 나의 경우는 70g 정도 썼다. 페이스트리는 냉동생지를 구입하여 쓰는 게 훨씬 바삭하고 맛있는 크림 돌체가 된다. 크림에 버터가 안 들어가서 전체적인 맛이 무겁지 않고 맛있다.

 

 


 

고영심(모니카) 디 모니카(di monica) 대표

▲교황청립 우르바노대학 선교학 석사, 박사과정 수료 ▲교황청립 라떼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혼인과가정신학대학원 석사, 박사과정 수료 ▲현재 수원가톨릭대 강사 ▲통번역가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부설 평화나눔연구소 연구위원 ▲쿠치나 메디테라네아(지중해식) ‘디 모니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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