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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선희 시인 / 소금의 밑바닥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1. 5.

이선희 시인 / 소금의 밑바닥

 

 

소금을 녹이니

바닥에 가라앉은 뻘이 보인다

순백색 소금의 몸에 뻘이 들어있었다니

짜디짠 정신으로

까칠하게 각을 세우고

세상의 간을 맞추던

그 정신의 기둥이 뻘이었을까

 

뻘을 품고

더 단단한 결정이 되어갔을 소금은

한번도 뻘을 인식하지 못하고 평생을 살았을지 모른다

 

어쩌면 뻘과의 관계를 조금은 부끄러워했을지도 모른다

밑바닥에 가라앉은 뻘처럼

어느 날 치매 병동에서 본 얌전하고 곱던 할머니

세상의 온갖 욕을 종일 읊조리고 있었는데

 

내가 녹아버렸을 때

나를 지탱하던 그 무엇의 모습이

문득 궁금하고 두려워지는 것이다

 

-시집 『소금의 밑바닥』(지혜, 2014) 수록

 

 


 

 

이선희 시인 / 우린 서로 난간이다

 

 

다리 위가 세상이다

달리며 걸으며 끌며 밀며 가는 세상이다

난간이 다리 위의 삶을 보호한다

다리 위에서는

잠깐 한눈을 팔아도 곧바로 추락한다

난간이 없었다면

추락은 더 빈번했을 터

삶의 지지대

다리 위 수직의 뼈대들

당신과 나

우리는 서로 난간이다

그 난간으로 허공의 삶을 셈하거나

추락의 깊이를 헤아린다

 

-시집 『우린 서로 난간이다』(종려나무, 2014) 수록

 


 

이선희 시인

충남 공주에서출생. 2007년《시와 경계》로 등단. 시집으로『우린 서로 난간이다』,『소금의 밑바닥』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