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희 시인 / 소금의 밑바닥
소금을 녹이니 바닥에 가라앉은 뻘이 보인다 순백색 소금의 몸에 뻘이 들어있었다니 짜디짠 정신으로 까칠하게 각을 세우고 세상의 간을 맞추던 그 정신의 기둥이 뻘이었을까
뻘을 품고 더 단단한 결정이 되어갔을 소금은 한번도 뻘을 인식하지 못하고 평생을 살았을지 모른다
어쩌면 뻘과의 관계를 조금은 부끄러워했을지도 모른다 밑바닥에 가라앉은 뻘처럼 어느 날 치매 병동에서 본 얌전하고 곱던 할머니 세상의 온갖 욕을 종일 읊조리고 있었는데
내가 녹아버렸을 때 나를 지탱하던 그 무엇의 모습이 문득 궁금하고 두려워지는 것이다
-시집 『소금의 밑바닥』(지혜, 2014) 수록
이선희 시인 / 우린 서로 난간이다
다리 위가 세상이다 달리며 걸으며 끌며 밀며 가는 세상이다 난간이 다리 위의 삶을 보호한다 다리 위에서는 잠깐 한눈을 팔아도 곧바로 추락한다 난간이 없었다면 추락은 더 빈번했을 터 삶의 지지대 다리 위 수직의 뼈대들 당신과 나 우리는 서로 난간이다 그 난간으로 허공의 삶을 셈하거나 추락의 깊이를 헤아린다
-시집 『우린 서로 난간이다』(종려나무, 2014)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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