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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정수 시인 / 너도바람꽃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1. 5.

김정수 시인 / 너도바람꽃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자꾸 덧나는 건

 

누군가

그 안을 오래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건드리지 않아도 아프다

 

 


 

 

김정수 시인 / 파묘

 

 

남의 선산에 누운 10년을 세상 밖으로 건져 올렸다.

살을 다 빼 먹은 뼈가 싯누렇다

목을 짓누르던 암도 사라지고

흙에 이빨 박은 몰락도 기억하고

미처 태우지 못한 문장을

강의 지느러미 곁에 방생하였다.

한동안, 햇빛을 달리니 동해였다.

손을 씻고

생선구이를 시켰다.

길의 속도로 젓가락을 매만지고

등 푸른 가슴을 열자

살을 다 내려놓은 뼈가 보였다.

나 여태,

아버지의 살을 발라 먹고 있었다.

 

 


 

 

김정수 시인 / 상봉

 

 

당뇨검사를 하려고 새끼손가락의 지문을 찔렀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붉은

눈과 마주쳤다.

 

 


 

 

김정수 시인 / 연두에 그린

 

 

늙은 플라타너스 발밑에서 어린나무가 제 어미의 시커먼 속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손바닥만 한 울음으로

생生의 바깥을 다 가렸다.

 

-시집 <홀연, 선잠>에서

 

 


 

김정수(金正洙) 시인

1963년 경기도 안성에서 출생. 경희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90년 《현대시학》에 시 <지하철> 외 10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서랍 속의 사막』 『하늘로 가는 혀』 『홀연, 선잠』. 현재 글발, 빈터 동인으로 활동 中. 2013년 한국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 2015년 제28회 경희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