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춘 시인 / 동행
물돌물 돌물돌 물이 흘러갑니다
함께 가자 함께 가자
어린 물이 어르며 어린 돌을 데리고 흘러갑니다
모래무덤 끝으로 그리움으로
서정춘 시인 / 봄날
나여 푸르러 맑은 날과 바람 불어 좋은 날은 죽기에도 좋은 날 이런 날은 산불 같은 꽃상여 좀 타봤으면
서정춘 시인 / 30년 전 -1959년 겨울
어리고, 배고픈 자식이 고향을 떴다
아가, 애비 말 잊지 마라 가서 배불리 먹고 사는 곳 그곳이 고향이란다
서정춘 시인 / 종소리
한 번을 울어서 여러 산 너머 가루 가루 울어서 여러 산 너머 돌아오지 말아라 돌아오지 말아라 어디 거기 앉아서 둥근 괄호 열고 둥근 괄호 닫고 항아리 되어 있어라 종소리들아
서정춘 시인 / 저수지에서 생긴 일 2
어느 날 저수지 낚시터엘 갔었더랍니다 처음에는 저수지 물이 아주 잔잔해서 마치 잘 닦인 거울 속 마음 같아 보였는데 거기다가 길게 날숨 쉬듯 낚싯줄을 드리웠는데 때마침 저수지 물이 심각하게 들숨 날숨으로 술렁거렸고 난데없는 왜가리의 울음방울 소리엔 듯 화들짝 놀란 물고기가 저수지 전체를 들어 올렸다가 풍덩풍덩 놓쳐버렸기 때문에 나 역시 낚싯줄에 간신히 걸린 한 무게를 깜짝깜짝 놓쳐버릴 수밖에 없었더랍니다 그러자 저수지 물은 다시 잔잔해졌고 아 이렇게 한순간에 일어난 "긴장감 속에 깃든 평화"를 나는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아직 맛본 일이 없었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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