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석 시인 / 첫눈에
첫눈에 혹해서 첫눈에 홀딱 반하여 첫눈에 몸과 맘 다 빼앗겨 첫눈에 넋을 잃으니 첫눈에 슬픔뿐이다
『견딜 수 없는 날들』, 창비, 1996
박해석 시인 / 띄어쓰기에 맞게 쓴 시
서로가 이만큼씩 떨어져 살아 이 세상이라고 띄어 쓰는가 그런 것들이 비로소 한데 모여 저세상이라고 붙여 쓰는가
더는 춥지 말자고 더는 외롭지 말자고 더는 헤어지지 말자고
-시집 『중얼거리는 천사들』
박해석 시인 / 비
용산역 광장 무료 급식 버스 앞으로 길게 이어진 줄이 차츰 줄어들며 우산들이 모인다 맨머리도 있다 땅에 식판을 내려놓고 더러는 손에 쥔채 쪼그려 밥을 먹는다 빗줄기가 굵어지며 염치없이 우산 속으로 쳐들어가는 놈이 있다. 눈으로 뛰어들어가는 놈이 있다 한술 더 떠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다가 굴러떨어져 수저 위 밥알을 아작아작 적셔주는 놈이 있다 너무 짜게 먹으면 몸에 해롭다고 국에 풍덩 빠져 휘휘 휘저어 간 맞춰주는 놈도 있다
-시집 『중얼거리는 천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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