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부온 프란조!] 27. 로마(Roma), 사랑(Amor), 그리고 시뇨라

by 파스칼바이런 2022. 12. 10.

[고영심의 부온 프란조!]

27. 로마(Roma), 사랑(Amor), 그리고 시뇨라 데레사

(Signora Teresa) ②

성탄 전야 ‘기름지지 않은 음식’ 생선 요리 즐기며 주님 탄생 준비

가톨릭평화신문 2022.12.11 발행 [1690호]

 

 

 

 

로마에서 보낸 18번의 12월에 관한 추억

 

“제가 보냈던 로마에서의 18번의 12월이 어떠했는 줄 아시나요? 시뇨라 데레사? 맞아요, 너무도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대학 기숙사에 있었을 때의 12월과 로마인 이웃들과의 12월은 확연히 달랐어요. 정말입니다. 우선 학생 시절의 12월은, 너무 오래된 추억이지만, 다시 떠올리니 웃음이 나옵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대학생들이다 보니, 이미 크리스천 문화가 그들 삶 속에 녹아 있는 친구들의 성탄 문화는 솔직히 멋져 보였어요. 성탄 방학이 시작되면, 친구들은 한껏 멋을 내고 삼삼오오 시내로 나가더라고요. 값비싼 선물은 아니더라도 친구들에게 줄 선물, 카드를 사느라 온종일 거기에 정신이 팔려 저녁 식사 시간에 헐레벌떡 뛰어 돌아온 친구들이 생각납니다.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성탄의 종교적 의미와 이탈리아의 전통문화에 이르기까지 피부로 직접 느껴보니 풍요로운 마음이 저절로 생겼습니다. 그리하여 저도 친구들처럼 시내에 나가 이것저것 성탄 선물과 카드를 사들여 정성스럽게 포장하고 아름다운 언어를 총동원하여 카드를 썼어요. 제 축하와 정성을 받고 기뻐할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요. 캄캄한 어둠 속의 산타클로스처럼 친구들의 사물함에 살짝 넣고 왔지요. 아, 잽싼 다른 산타의 선물은 이미 친구들의 사물함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 로마 우르바노대학 재학시절에 친구 안토넬라(왼쪽)와 성탄나무와 구유 아래에서 함께한 필자.

 

가나에서 온 피터의 성탄 무기 ‘빨간 양말’

 

시뇨라 데레사, 며칠 전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리나라와 가나전이 있었어요. 가나에 승리를 열망하는 국민의 함성도 함성이었는데, 글쎄 저는 그 순간 잊고 있던 한 친구가 떠오르는 거예요. 같은 학년의 ‘피터’라는, 가나에서 장학생으로 온 친구였답니다. 저는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어요. 개강하자마자 저를 쳐다보더니 저에게 푹 빠진 것이란 걸요. 당시 동양인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고, 심지어 쌍꺼풀 없는 제 눈을 보고 누구나 ‘판타스틱(Fantastico)!’하다고 제 미모에 감탄을 연발했으니까요. 제가 한 미모했었거든요. 하하하. 농담 아녜요. 시뇨라 데레사! 강의 중에도 하도 저를 쳐다보니 얼마나 불편하던지, 피터에게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너희 주교님께 편지를 쓸 거라고 엄포를 놨는데도 요지부동이었어요. 아예 교수님들도 친구들도 피터의 이러한 일방적인 2m 애정 공세(항상 멀찍이서 바라봄)를 즐기는 듯하였습니다.

 

결정적으로 제가 웃음을 빵 터뜨렸던 그해 성탄, 피터는 바짝 붙은 머리에 가르마까지 하곤 까만 양복에 빨간 셔츠를 차려입고 나타난 것이었어요. 얼마나 향수를 뿌렸는지, 학생 식당 전체가 그의 향수 냄새로 진동하였어요. 성찬이 차려진 식당에 둘러앉은 학생들과 교수들 사이에서 피터는 역시 저를 주시하며 뭔가를 보여주고 싶은 여유만만한 미소(피터는 미소만 띠었다. 그의 앞니 하나가 빠진 핸디캡을 결코 드러내지 않았다.)를 띠더군요. 저에게만 보여주고 싶었던 그의 비장의 성탄 무기가 이미 다른 친구들에게 들켜 버린 것이었어요. 모든 친구가 박장대소한 이유는 그의 양말이었답니다. 피터는 분명 저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었어요. 순간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결코, 남들에게 주지 않는 환한 웃음과 저 빨간 양말의 의미를요. 시뇨라 데레사, 그날은 피터에게 화를 내지 않았어요. 친구들과 돌아가며 성탄 인사(이탈리아식으로 왼쪽 오른쪽으로 얼굴을 가져다 대는 인사)를 하다 피터 차례가 되자 ‘모니카 영심 코! 나 어때 근사해? 오늘 이 양말 신경 썼는데 괜찮아?’라며 앞니 없는 함박웃음으로 ‘성탄 축하해, 부온 나탈레!(Buon Natale) 모니카 영심 코!(Monica Young Shim Ko, 피터는 항상 나를 이렇게 불렀다)’ 그냥 미소만 띠는 게 훨씬 나아 보였지만, ‘응~ 멋있어. 부온 나탈레, 피터!’라며 성탄 인사를 건넸죠.

 

시뇨라 데레사, 그때 피터에게 물어보지 못한 말이 있었어요. 지금도 궁금하답니다. 그 양말이 글쎄 추기경의 양말색깔과 똑같다고 쑤군거리는 친구들도 있었거든요. 학업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간 피터는 고향의 가나 규수와 혼인하여 교회를 위해 열심히 일하며 산다는 이야기를 그의 후배인 마르타를 통해서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역만리에서 같은 날, 피터도 한국-가나전을 보며 ‘모니카 영심 코’를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생전 처음으로 만나 같이 공부했던 아프리카의 피터, 모잠비크의 안젤라, 콩고의 아순타 등 친구들이 생각나는 12월입니다. ‘피터, 그때 그 양말 어디서 구한 거야?’ 라고 물어볼 날이 올까요?

 

왜 육류는 제외하고 생선으로만 준비할까

 

시뇨라 데레사, 이탈리아인들은 성탄 당일보다 12월 24일 성탄 전야의 음식을 준비하는 데 온 신경을 쓴다는 것을 시뇨라 데레사의 옆집으로 이사하고 알았습니다. 그 하루의 저녁 식사를 위해 소비하는 비용이 천문학적 금액이라고 좀 과장하여 말하는 이들도 있더군요. 왜냐하면, 평소에 비싸서 사지 못했던 생선이나 해물을, 그것도 생물로 사려고 지갑을 기꺼이 여니까요. ‘왜 성탄 전야 저녁 식사를 육류를 일체 제외하고 생선으로만 준비하느냐?’는 저의 질문에, 시뇨라 데레사를 비롯하여 동네 사람들은 ‘응, 우린 옛날부터 그렇게 해왔어. 우리 전통이지’라고 답해 주셨잖아요. 제 의문을 풀어 준 분은 알렉스 본당 신부님이셨어요. 기억하세요? 그냥 ‘조상들이 그렇게 해왔으니 그런 거야’라는 상투적인 생각에 답답하셨는지, 대림 시기인 어느 주일 미사에 설명을 해주셨던 거요.

 

 

▲ 디 모니카에 차린 성탄 식탁. 성탄이면, 이탈리아에 있을 때처럼 필자는 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음식을 나누며 성탄의 기쁨과 희망을 나눈다.

 

예수님 기다리며 함께하는 성탄 전야 만찬

 

금요일, 성령 강림, 모든 성인, 성탄의 전야는 금식 또는 가난한 음식으로 경건하게 맞는 가톨릭교회가 지켜오던 신심이었고, 특히 성탄 전야의 ‘기름지지 않은 음식을 먹는 날(Giorni di magro)로서 구세주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을 더 깨끗이 표현하고자 시작했다고 그러시더군요. 성경적 의미도 설명해주셨는데 생각이 나지 않는군요. 어쩌면 이 의미는 예수님을 기다리며 함께하는 식탁에 육류(피)보다는 좀더 영적으로 깨끗한 생선이나 해물을 식탁에 올리는 게 낫지 않겠냐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네요. 그렇게 생선이 가난한 식탁의 주인공이 되면서 오늘날에는 외려 빈부격차까지 느끼게 되었으니, 안타깝습니다. 돈 없는 사람들은 그 생선을 비싼 생물로 살 수 없으니 냉동 생선으로 만족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그게 현실이고 보니, 성 바오로 6세 교황께서는 종교적 계율로 금식과 단식의 실천을 완화하고 제한한 것이 감사하게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미 이탈리아의 국민적 전통으로 자리 잡은 성탄 전야 식탁은 시뇨라 데레사만 봐도 압니다. 성탄 2주 전에 이미 사다 놓으신 ‘바칼라(Bacal, 소금에 절인 대구)’를 물에 담가 소금기를 없애기 위해 밤낮으로 물을 갈던 것도 기억납니다. 하얀 속살로 변하는 바칼라는 몇 가지 맛있는 요리로 변신하니, 저는 군침을 흘리며 성탄 전야 성찬만 기다렸지요.

 

시뇨라 데레사, 제 위층에 사는 세 아이의 엄마인 당신 막내딸 마우라의 성탄 전야 만찬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녁 8시에 시작한 만찬이 새벽 3시에 끝났던 그 날의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죠. 아, 제가 다음 이야기에 돌아가신 시뇨르 피르미노(Signor Firmino)를 언급해도 되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두 분이 늘 제 앞에서 티격태격 싸우신 스토리는 되도록 언급 안 할게요. 시뇨라 데레사, 춥지 않은 것 같은데, 으슬으슬 추운 로마 날씨조차 그립습니다. 건강 유의하시고 안녕히 계세요. ‘뜻깊은 대림(Buon Avvento)!’”

 

 

레시피 / 성탄절 생선 주파(Zuppa di pesce di Natale)

 

▲준비물 : 씨를 뺀 생토마토 2개, 홍합 적당량, 봉골레(Vongole, 바지락), 문어, 오징어, 새우, 가재, 마늘 2쪽, 셀러리(Celery), 양파, 당근, 페페론치노(Peperoncino, 매운 고추 일반), 이탈리안 파슬리 프레체몰로(Prezzemolo), 화이트 와인(드라이, Secco), 올리브유(엑스트라 버진), 소금, 후추.

 

→채수 : 깊은 냄비에 물 3ℓ, 화이트 와인 300㎖, 당근 1개, 셀러리 1줄기, 양파 1개, 파슬리 줄기 1개, 페페론치노 1개, 소금을 넣고 끓인다.

 

→모든 해물은 흐르는 물에 잘 씻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 놓는다. 문어를 데친 물은 버리지 않는다.

 

→홍합과 바지락은 삶아서 살은 발라내고, 홍합과 바지락을 삶은 국물은 체에 밭친 다음 따로 둔다.

 

→냄비에 마늘과 당근, 양파, 셀러리를 잘게 다진 후 올리브유를 두르고 나무 주걱으로 볶는다.

 

→씨를 뺀 토마토를 잘게 썰어 같이 볶은 뒤, 가재와 화이트 와인을 넣고 바짝 볶는다.

 

→홍합과 바지락, 새우만 제외하고 준비된 해물(오징어, 문어)을 넣고 만들어 놓은 채수와 해물 국물을 넉넉히 부은 뒤 40분간 중불에서 끓인 뒤 마지막으로 홍합, 바지락, 새우를 넣고 10분간 끓인다. 소금과 후추로 간을 맞춘 뒤 올리브유를 살짝 올린 뒤 접시에 오븐에 구운 통곡물빵과 곁들여 낸다.

 

▲모니카의 팁 : 오징어와 문어를 충분히 끓여야 주파(Zuppa)의 맛이 좋다. 가재가 없으면, 꽃게를 이용해도 좋다. 바지락과 홍합의 육수가 짜니 마지막에 간을 맞출 때, 소금은 적당량만 넣으면 된다. 매콤한 맛을 즐기려면, 주파 위에 페페론치노를 1개 정도 부수어 넣으면 된다. 바삭한 빵과 함께 즐기는 주파의 맛은 우리 입맛에 맞는 최고의 겨울 음식이다.

 

 


 

고영심(모니카) 디 모니카(di monica) 대표

▲교황청립 우르바노대학 선교학 석사, 박사과정 수료 ▲교황청립 라떼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혼인과가정신학대학원 석사, 박사과정 수료 ▲현재 수원가톨릭대 강사 ▲통번역가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부설 평화나눔연구소 연구위원 ▲쿠치나 메디테라네아(지중해식) ‘디 모니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