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숙 시인 / 통조림 통
통조림에 대해 언급한다면 사람만큼 완벽한 통조림도 없을 것입니다 유통기한은 아무도 모릅니다 종류와 성분을 막론하고 심지어 아름다운 언행과 숨겨진 이면이 같은 양심으로 들어있기도 합니다
아침으로 물고기를 먹었다면 심해와 수평선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무어라 딱히 이름짓기도 힘든 아늑하지도 깊지도 않은 동맹과 호의들도 더부룩한 헛배처럼 들어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오래 전 발명된 단순한 깡통따개를 두려워 합니다 열린다는 것은 망가진다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다시 닫을 수 있는 상태여야만 열리는 일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용기(用器)들엔 뚜껑이 있는 반면 통조림엔 뚜껑이 없습니다 한 번 열리면 두 번 다시 닫힐 일이 없는 통조림의 일회성 생은 회자(膾炙)되어야만 합니다
바다가 살아있는 것들의 통조림이라면 사람은 죽은 것들로 연명하는 그악스러운 통조림인 것입니다 격월간 『현대시학』 2022년 9~10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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