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 시인 / 백합죽
합이 하나만 들어도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된다는데 합이 백이나 들어 상합으로 여기는 조개가 있지 서해 변산반도 끝자락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줄포만 진흙 갯벌에서 꽃으로 피어난 조개가 있지 오늘은 눈발 치는 곰소항에 나가 할머니 쌈지 닮은 백합 한 움큼 사다 백합죽을 설설 끓입니다 부추와 당근, 돌산 갓을 송송 썰어 넣고 조개 중에 으뜸이라 불리는 백합죽을 끓입니다 백합죽 위에 볶은 참깨와 김 가루 솔솔 뿌려 할머니가 끓여 주시던 내 어릴 적 백합죽을 끓여 봅니다 눈 내리는 동짓날에 연인들이 만나 백년해로하자며 손가락 걸고 먹던 백합죽을.
강민숙 시인 / 우물
얼마나 깊은 것일까 우물 안에 돌멩이 하나 던저 넣으면 물거품 잠시 피워 올리다 사라진다 상처의 흔적 안고 우물은 돌이 되고 돌은 우물이 되어 간다 두레박 내려 퍼올린 물 벌컥벌컥 들이켜는 사람은 우물의 깊은 상처를 모른다 누군가 찾아와 우물 들여다봐도 그 깊은 상처를 알지 못한다 세월로도 삭혀낼 수 없는 돌은 우물이 되어 달이 뜨고 별이 져도 서로 살 부비며 한 몸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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