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민 시인 / 제2 외국어를 떠올리는 밤
까만 밤이라 쓰고 환한 어둠이라 읽는다 초침 소리가 커질수록 동공 속에 차오르는 만월 수직의 세계에 서 있는 나는 수평의 세계로 떨어지는 당신에게 갈 수 없다
시간의 꼬리를 붙잡으려 분침과 초침을 겹쳐 보지만 당신은 내 손을 뿌리치고 더 멀리 달아난다
눈을 감으면 천길 낭떠러지 눈을 뜨면 깊이를 알 수 없는 환한 어둠 긁어도 긁어도 스크래치만 남을 뿐 당신의 하늘은 더 밝아지지 않는다
죽음이 점점 당신의 숨통을 조여오던 그 시간 나는 왜 이제는 잊힌 제2외국어를 떠올렸을까
마마마마 엄마는 1성 삼베는 2성 말은 3성 욕하다는 4성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30년 만에 불현듯 떠올라 어깨 위로 미끄러지는 성조들 그사이 당신의 숨은 모스부호처럼 흐르다 바닥으로 내리꽂힌다
끝내 번역하지 못한 당신의 유언
바닥까지 내려가는 슬픔은 절벽의 깊이가 아니라 그 끝을 딛고 버티는 발등의 두께로 기억될 것이다
마마 마마 까만 밤 수직의 세계 속으로 휘어져 들어오는 허리가 긴 슬픔 숨이 빠져나간 자리가 오래도록 환하던
마 마 마 마 우리는 더운 숨을 식혀가며 탁성으로 울었다 달빛이 어룽거리는 창으로 슬픔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웹진 『시인광장』 2023년 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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