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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류인채 시인 / 고등어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3. 14.

류인채 시인 / 고등어

 

 

그 여름

 

행상 나간 아버지

고등어는 종일 손수레 위에서

이 동네 저 동네 떼로 다녔다

지느러미들은 빗금 같았다

 

고등어 몸통은 캄캄했다

그 저녁 아버지는 비린내와 함께 돌아왔다

가문 논바닥 같은 손에서

누런 러닝셔츠와 밀짚모자에서

비린내가 났다

아이 하나 빠져 죽었다는 도림저수지에서도 비린내가 나고

질경이 바랭이 강아지풀에서도 비린내가 났다

 

빈손의 무게에 휘청거리던 아버지

썩은 고등어들을 죄다 쓸어 두엄에 묻던

아버지의 검정 고무신 뒤축에 피가 엉겨 있었다

 

그 저녁

고등어를 찢어발기던 자식들의 젓가락질

쫄깃쫄깃한 살을 다 발라먹고

아가미와 눈알도 파먹고

즐거운 밥상

 

뼈만 남은 아버지

 

 


 

 

류인채 시인 / 싸리꽃 지게

 

 

오월이면 아버지는 내 키보다 큰 싸리나무를 지고 산에서 내려오셨다

보랏빛 꽃들이 누워 산등성이 한쪽을 쓸며 언덕을 내려왔다

막 비질한 하늘로 꿩꿩 장끼가 날아올랐다

무지갯빛 꿩의 깃털이 바작에 사뿐 내려앉았다

문득 청보리 빛 하늘이 열리고

아버지의 등 뒤로 햇살이 부챗살처럼 퍼져나갔다

 

아버지는 매일 하나님을 지고 오셨다

 

 


 

류인채 시인

1961년 충남 청양에서 출생. 인천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 전공. 문학박사. 1998년『문학예술』, 2014년 《문학청춘》 신인상 수상. 2014년 인천문학상 수상. 시집으로 『나는 가시연꽃이 그립다』 『소리의 거처』 『거북이의 처세술』 『계절의 끝에 선 피에타』 등이 있음. 제26회 인천문학상 수상. 현재 경인교육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