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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백형찬의 가톨릭 예술가 이야기] (3) 장발 루도비코 (상)

by 파스칼바이런 2023. 1. 18.

[백형찬의 가톨릭 예술가 이야기] (3) 장발 루도비코 (상)

열아홉 살에 김대건 신부 초상화 그린 ‘신심 깊은 천재’ 장발

가톨릭평화신문 2023.01.15 발행 [1695호]

 

 

 

 

장발(루도비코, 張勃, 1901~2001)이 그린 성 김대건 신부 초상화 한 점이 새롭게 발견되었다. 이 초상화는 장발이 용산신학교(가톨릭대학교 신학부 전신) 교장 기낭 신부 은경축(사제 수품 25주년)을 기념해 그린 것이다. 장발은 동경미술학교 유학 시절이던 열아홉 나이에 김대건 신부 초상화 두 점을 그렸다. 한 점은 가톨릭대학교가 소장하고 있는 ‘김대건 신부상’인데, 다른 한 점의 소재가 불분명했었다. 그 베일에 가려졌던 작품이 발견된 것이다. 어떻게 십 대에 ‘김대건 신부상’을 그리려고 마음을 먹었을까. ‘김대건 신부상’은 갓 쓴 양반 복장을 하고 있다. 오른손에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었고, 왼손에는 성경을 가슴에 품었다. 김 신부는 눈을 크게 뜨고 입술은 꼭 다문 채 정면을 향하고 있다. 표정은 조선 최초의 사제답게 경건하기만 하다. 이 작품은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화이다.

 

 

시복식의 감동 성화에 담아

 

장발은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형인 장면(요한 세례자)과 함께 로마 바티칸에서 열린 ‘조선 순교 복자 79위 시복식’에 참여했다. 이 행사는 장발 생애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장발은 성 베드로 대성전 외벽을 장식한 조선 복자 순교 성화를 보고 크게 감동했다. 그 성화는 장발이 평생 성화를 그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 성화는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벽에 걸려 있는 ‘79위 복자화’이다. 그림의 배경은 성 베드로 대성전이다. 하늘에서는 찬란한 빛이 쏟아져 내리고 두 천사가 79위의 영광을 노래한다. 가운데는 조선에서 순교한 두 명의 프랑스 신부와 조선교구장이었던 앵베르 주교가 서 있다. 그들을 가운데 두고 조선 순교자들이 모였다. 그림 양쪽 맨 앞에는 소년으로 옥사한 유대철 베드로와 참수당한 동정 자매 김효주 아녜스와 김효임 골룸바가 있다.

 

장발은 시복식에서 받은 감동을 어서 빨리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곧바로 명동대성당의 제대 벽화 ‘14사도’를 제작했고, ‘복녀 골룸바와 아녜스 자매’ 그리고 ‘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성화를 그렸다.

 

‘14사도’ 그림을 그릴 때 장발은 경주 석굴암을 둘러보고, 내벽의 원형구조와 본존불 둘레의 10대 제자상 입상 부조를 참작했다고 한다. ‘14사도’는 우리나라 불교와 가톨릭이 자연스럽게 융합된 결과라 할 수 있다.

 

‘복녀 골룸바와 아녜스 자매’와 ‘복자 김대건 안드레아’ 성화는 현재 절두산순교박물관에 있다. ‘복녀 골룸바와 아녜스 자매’는 기해박해 때 순교한 자매를 기리는 성화이다. 자매는 관군에게 체포되어 고문 끝에 목이 잘려나가는 참수형을 받았다. 이 성화는 자매가 복자로 인정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린 것이고, 자매는 서울 여의도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화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자매가 나란히 서 있는 그림이다. 언니는 노랑 저고리에 분홍치마를 입었고, 동생은 분홍 저고리에 청색 치마를 입었다. 자매가 각각 들고 있는 백합은 ‘순결’의 상징이며, 언니가 들고 있는 종려나무는 ‘그리스도의 승리’를 뜻하고, 동생이 들고 있는 칼은 ‘참수 순교’를 상징한다. 성화의 배경에는 산이 펼쳐졌고 강이 휘돌아 흐른다. 전형적인 조선의 평화로운 풍경이다.

 

‘복자 김대건 안드레아’는 김대건 신부의 초상을 전신상으로 그린 성화다. 갓 쓴 조선 선비의 모습으로 오른손은 종려나무를 잡고, 왼손은 성경을 감싸 가슴까지 품어 올렸다. 시선은 정면을 바라보는 엄숙한 표정이다. 조선의 파란 하늘이 열려 있고, 푸른 산이 저 멀리 보이며 푸른 강이 유유히 흐른다. 좌우대칭의 엄격한 분위기다. 장발은 김대건 신부의 초상을 여러 번 그렸다. 백수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복자 안드레아 김대건 초상’을 그렸다. 또한, 복녀 김 골룸바와 김 아녜스를 소재로 성화도 여러 점 그렸다. ‘복녀 골룸바와 아녜스 자매’를 그렸고, 평양 서포성모회수녀원의 ‘복녀 김 골룸바와 아녜스 치명’을 그렸다. 또한 ‘김 골룸바와 아녜스 자매’를 그렸다. ‘김 골룸바와 아녜스 자매’ 작품은 꽃이 가득한 길을 두 자매가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으로 천국에 있는 순교자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장발은 성화를 워낙 잘 그려서 여러 성당에서 성화 제작 의뢰를 받았다. 그때 그린 작품들이 평양교구 신의주성당 벽화 ‘성령 강림’과 비현성당 제단 벽화 ‘예수 성심상’, 가르멜수녀원 제단화 ‘예수 탄생 예고’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이다.

 

 

▲ 서울대교구 헤화동성당에서 장발(왼쪽에서 두 번째)

 

성미술전람회

 

장발은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을 창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서울대와 홍익대 교수들로 서울미술가회를 구성해 ‘성미술전람회’를 개최하였다. 서울 미도파백화점 화랑에서 열린 전람회 개막식에는 당시 서울교구 노기남 주교를 비롯해 가톨릭 주요 성직자들이 참석했다. 당대 미술계를 대표하는 24명의 작가가 참여했는데, 대표적인 전시 작품으로는 장발의 ‘십자가의 그리스도’, 김세중의 ‘복녀 김 골룸바와 아녜스’ 장우성의 ‘성모자’ 남용우의 ‘성모칠고’ 김병기의 ‘십자가의 그리스도’ 김정환의 ‘성모영보’를 들 수 있다. ‘성미술전람회’로 우리나라에 가톨릭 미술이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렸다. 또한, 장발은 혜화동성당 설계를 비롯해서 부조 제작을 총지휘했다. 혜화동성당은 우리나라 건축가와 조각가 그리고 우리나라 자본에 의해 설립된 성당이다. 한국의 가톨릭 미술은 이렇게 장발에 의해 시작되고 꽃을 피워나갔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다

 

장발은 인천(당시 제물포)에서 독실한 가톨릭 집안의 3남 4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본명은 지완(志完)이었으나 후에 개명했다. 호는 우석(雨石)이고, 가톨릭 세례명은 루도비코이다. 아버지는 인천 해관(현재의 세관)의 직원이었다. 장발은 서구의 새로운 문물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개항지에서 살았기에 사물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되었다. 이렇듯 장발은 독실한 가톨릭 신앙을 가진 최고의 신식 가정에서 자랐다. 이런 성장 환경은 장발의 신앙과 삶에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 형인 장면 박사는 민주당 정부의 초대 내각 수반(현 국무총리)을 역임했다. 그의 셋째 아들이 장익 주교이다. 동생인 장극 박사는 항공공학의 세계적인 석학이 되었다. 누이동생은 메리놀수녀회의 첫 동양인이었으나 안타깝게도 6ㆍ25 전쟁 때 평양에서 순교했다.

 

장발에게 깊은 영향을 준 외국 선교단체로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와 독일 성 베네딕도회 오틸리엔연합회 그리고 미국 메리놀외방선교회를 들 수 있다. 파리외방전교회는 명동대성당을 신축했는데 장발은 성당 내부의 제단 둘레에 ‘14사도’를 제작했다. 장발의 성화 제작에 중요한 계기를 만들어 준 로마 바티칸의 ‘조선 순교복자 79위 시복식’이 거행되도록 한 기관도 파리외방전교회였다. 성 베네딕도회 오틸리엔연합회는 성화 제작에 깊은 관심을 보였던 장발에게 보이론(Beuron) 화파의 미술 양식을 전해주었다. 그래서 장발의 모든 성화에서는 보이론 화파의 특징인 절제와 균형의 미가 살아 있다. 메리놀외방선교회는 장발 가족 전체와 연관이 있다. 장면·장발 형제가 미국으로 유학 갔을 때 메리놀신학교에서 영어를 배웠다. 그리고 장면은 유학 후 메리놀외방선교회 평양교구에서 외국 신부들에게 한글을 가르쳤고, 누이동생은 신의주 메리놀 수녀회의 일원으로 평양 ‘성모수녀회’ 원장 수녀를 역임했다.<계속>

 

 


 

백형찬(라이문도) 전 서울예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