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구 시인 / 걷기 예찬
나는 걷는 걸 좋아한다 걸을수록 나 자신과 멀어지기 때문이다
체중 조절, 심장 기능 강화, 사색, 스트레스 해소 등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걷기란 갖다 버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제는 만 오천 보 정도 이동해서 한강공원에 나를 유기했다
누군가 목격하기 전에 팔다리를 잘라서 땅에 묻고 나머지는 돌에 매달아 강물에 던졌다
머리는 풍덩 소리를 내며 가라앉았지만 집에 돌아오면 다시 붙어 있었고 나는 잔소리에 시달려서 한숨도 못 잤다
걷기란 나를 한 발짝씩 떠밀고 들어가서 죽이는 것이다
여럿이 함께 걸을 때도 있었다
나와 함께 걷던 사람들은 모두 자신과 더 가까워지리란 믿음이 있거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는 점에서 걷기를 예찬했다
그런 날에는 밤 산책을 나가서 더 멀리 더 오래 혼자 걸었다
-월간 《現代文學》 2022년 10월호-
민구 시인 / 나의 시인
오늘은 너도 시가 된다는 것
너는 가장 달콤한 시라는 것
나는 제과점 앞을 서성이며 주머니 속의 동전을 만지작거리다가
케이크의 나라
초코와 라즈베리를 바른 도시를 가로질러 공항으로 간다
캄캄한 섬에 내려서 아무도 없는 상점의 유리창을 깨고
받으쇼, 탈탈 털어 동전을 내놓고 초를 꺼내서 불을 붙인다
비밀이 있다면 그것이 단 하나라면
오늘은 너도 시가 된다는 것
너는 가장 따뜻한 비라는 것
처음 만난 당신이 나의 시인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상웅 시인 / 부엌의 입맛 외 1편 (0) | 2023.03.24 |
---|---|
주병률 시인 / 오후의 잠 외 1편 (0) | 2023.03.24 |
서종현 시인 / 바람이 분다 외 1편 (0) | 2023.03.24 |
현택훈 시인 / 당신의 일기예보 외 1편 (0) | 2023.03.24 |
봉창욱 시인 / 마음의 풍경 (0) | 2023.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