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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용만 시인 / 귀향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4. 10.

김용만 시인 / 귀향

 

 

평생 그리던 시골집 하나 사놓고

덜컥 아팠다

속살이 타버린 줄도 모르고

하루를 못 버티고 다들 떠난

마찌꼬바 용접사로 삼십여 년 살았다

노동이 아름답다는데 나는 신물이 났다

살 타는 냄새를 맡았다

저 대문 활짝 열고

찾아올 동무를 위해

일찍 등불 걸어야지

저 허청엔 닭장을 지어야지

첫닭이 울면 어둑어둑 비질을 하고

동네 한 바퀴 돌아야지

뚝뚝 떨어지는 능소화 꽃잎을

아침마다 주워야지

잉그락불 같은 채송화를 마당 가득 심어야지

불 끄면 마당 가득 쏟아지는

별들을 소쿠리에 담아야지

새들이 오래 놀다 가는

바람의 집을 지어야지

 

-시집 <새들은 날기 위해 울음마저 버린다>에서

 

 


 

 

김용만 시인 / 왜

 

 

사람들은 왜

 

가을에는

 

책을 보라 하나

 

산을 보라 하지

 

단풍을 보라 하지

 

들길 산길 걸어보라 하지

 

 


 

 

김용만 시인 / 시인

 

 

아름다운 것들은

땅에 있다

 

시인들이여

 

호박순 하나

걸 수 없는

 

허공을 파지 말라

 

땅을 파라

 

 


 

 

김용만 시인 / 그리운 것들은 땅에 묻을 일이다

 

 

뒤란 밭에

쪽파를 심고 무씨를 뿌렸다

푝염 아래 땀이 짰다

돌은 돌이라 반갑고

흙은 흙이라 반갑다

밭이 아홉 개

오늘 또 하나 늘렸다

게으른 놈은 밭이 줄고

부지런한 놈은 밭이 는다

사서 고생이다

나는 또 몇 날

뒤란 밭을 오르내리며

가지런한 새싹을 기다릴 것이다

쪽쪽 올라오는

확실한 사랑을

 

그리운 것들은 땅에 묻을 일이다

 

 


 

김용만 시인

1956년 전북 임실 덕치마을 출생. 전주대 국문학과를 졸업. 2012년《포엠포엠 》 신인상을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