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석 시인 / 새들의 출근
이른 새벽 당산역 건널목 부지런히 일터로 향하는 비둘기는 볼록한 배를 내밀고 머리를 좌우로 돌려 보며 급한 마음을 진정시킨다 지각 출근이야 늦으면 먹이가 줄어드는 일당직 조급한 그는 동동거린다 늘 숨 가쁘게 돌아가는 도시 휩쓸려 가는 삶은 뒤돌아볼 시간을 주지 않아 안타까움으로 배 채우며 살아가는 도시의 비둘기들 볼록하게 튀어나온 배는 지난 삶의 증거 나란히 서서 신호를 기다리는 한 무리의 비둘기들이 어이구 어이구 소리 내며 동동거린다 지방에서 날아 올라온 나는 텃새들의 아침 출근 경쟁에서 한 걸음 뒤로 빠진 채 세상 둘도 없이 느긋한 폼으로 건널목 신호를 기다린다
오광석 시인 / 홀로 하루를 먹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꺼내 먹는 바나나우유맛 밤마다 끓여 먹는 라면맛 홀로 창문에 매달리는 세상과 격리된 수감자 격리를 이겨내는 건 상자 모양 원룸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일 무수한 광고지만 불려 다니는 한산한 당산동 거리 입과 코가 없는 사람들이 서로에게서 도망친다 바이러스가 엉겨 붙을라 흩어지는 사람들 어제가 복사되어 붙여진 오늘 특별한 것을 찾는데 손님 끊긴 문 앞에 앉은 식당 아저씨 올려다보며 짓는 눈웃음 마스크 속 가려진 속상함이 보인다 어둠이 밀려오는 저녁 무렵 하늘에 노란 눈 하나 떠 있다 다크서클처럼 깔린 노을 구름 눈썹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시집 <이상한 나라의 샐러리> 걷는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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