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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장인수 시인 / 물갈퀴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24.

장인수 시인 / 물갈퀴

 

 

새떼들은 수백 번씩 물 속으로 잠수했다

잠수하는 새떼 중에는 총각도 있었을 것이다

골지고 비릿한 저수지의 자궁을 만졌던가

아직 불길 한 번 일지 않았을 자궁을 만졌던가

저수지의 내부에는 얼마나 많은 물갈퀴 자국이

몸부림치며 찍혔다가 소멸했을 것인가

둑길을 길게 걸어나온 물갈퀴는 그의 것이었을까

혼자서 하늘로 날아올라가 울음을 우는 물갈퀴

저 혼자 저렇게 뜨거워진 울음을 이 지상에서

나는 아직 받아본 적이 없다

 

 


 

 

장인수 시인 / 울음 농사

 

 

개구리가 울음 농사를 짓고 있다

무논 속의 하늘과 구름에게 울음모를 심고 있다

무논의 물소리를 마시며 크는 울음모를 심고 있다

논바닥은 울음교실, 울음하늘, 울음노래방

논바닥은 온통 울음곳간

개구리비가 쏟아진다. 판초를 입어야 할 것이다

개구리울음속에는혈압을 안정시키고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다는

음이온의 전자가 쏟아지고 있다

나는 어렸을 적 저 울음의 원천이 궁금하여

개구리를 돌로 찧고 면도칼로 배를 갈라

팔딱팔딱 뛰는 심장을 꺼내본 적이 많았다

개굴경(經)의 깨알같은 글자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어둠이 함께 울고, 논두렁이 울고, 허공이 울고 있는데

나는 아직도 울음 농사법의 기초도 모르고 있다

아내의 저녁 짓는 소리는 어떤 개구리 울음인가

동해안의 파도는 어떤 개구리 울음인가

열정이란, 울창함이란, 달빛이란 어떤 개구리 울음인가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울음인가

 

 


 

 

장인수 시인 / 울음 곳간

 

 

딱따구리는 애벌레를 만나기 위해

나무를 쪼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떤 녀석은 순전히 숲의 가장 안쪽 심장부인

나무의 자궁에 울음 곳간을 만드는 것이다

나이테라는 시간의 둥근 지층에

울음 곳간을 만드는 것이다

지난여름 천둥 번개가

계곡에 쏟아 부었던 구름의 울음

심지어 양지에 모여 참새처럼 오글거리던 어린 명아주까지

이 산 저 산 침묵을 물어다가 저장하기 위해

울음 곳간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 집에도 딱따구리가 살고 있다

따다다다다다 따발총을 쏘는 아내의 수다도

입 닥치라는 아내의 수다도

사실은 제 몸에 울음 곳간이 있기 때문이다

 

 


 

장인수 시인

1968년 충북 진천에서 출생.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  2003년 계간 《시인세계》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유리창> <온순한 뿔> <교실 소리 질러> <적멸에 앉다> <천방지축 똥꼬발랄>이 있음. 교양서로 <창의적 질문법>이 있음. 현재 서울 중산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中.